"무용수여, 연습실 밖으로 나가라"

박돈규 기자 입력 2016. 9.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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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 김기민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 후 내한 "10대 때 다양한 경험 못한 것 후회.. 나만의 해석 담긴 춤 추는 게 꿈"

5년 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할 때 "까만 피부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했던 그가 세계 최고 발레리노가 되어 돌아왔다. 김기민(24)은 코르 드 발레(군무진)로 출발해 2015년 수석 무용수로 고속 승급한 데 이어 지난 5월엔 '브누아 드 라 당스(Be nois de la Danse)'를 차지했다.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는 브누아 드 라 당스가 한국 발레리노를 호명한 것은 처음이다(발레리나로는 강수진·김주원이 수상). 휴가를 맞아 서울에 온 김기민은 "잠깐 기뻤을 뿐 내 목표는 다른 데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수상하고도 인정을 못 받는 무용수가 적지 않다. 트로피는 중요하지 않다. 예술적으로 깊이 있는 춤, 나만의 해석이 담긴 춤을 추고 싶다."

그는 더 이상 영스타가 아니었다. "마린스키를 대표하는 무용수로서 더 긴장감을 느낀다"며 "다양한 클래식 발레와 배역을 김기민만의 스타일로 표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관객이 손꼽아 기다리는 내한 공연에 대해서는 "이르면 내년, 늦어도 후년에는 무대가 만들어질 것 같다"고 했다.

―수상 축하한다. 최근 부상 소식이 들렸는데.

"아시아 출신이고 나이도 젊어서 안 될 줄 알았다. 심사위원 7명 전원이 나를 추천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왼쪽 발목이 안 좋았는데 이제 괜찮다."

―그들이 꼽는 김기민의 강점이 궁금하다.

"점프력과 긴 체공 시간, 회전속도 같은 테크닉이다. 작품마다 내 해석을 칭찬할 때 더 기분이 좋다. '백조의 호수'의 왕자와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왕자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왕자다."

―그래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는 게 있다면?

"감정 탐사다. 표현해보지 못한 게 많다. 같은 '라 바야데르'도 수백 가지 다른 감정이 배어나올 수 있어야 한다."

―러시아 생활 적응은? 연애도 하고 실연도 겪었겠다.

"언어적으로 약간 부족할 뿐 적응은 끝났다. 헤어지고 아픔을 겪고 나니 표현력이 놀랄 만큼 깊어졌다(웃음)."

―마린스키 최고의 보물은?

"관객이다. 위선적 박수는 없다. 잘못하면 고함을 지르고 나가버린다. 관객 수준이 높아서 무용수가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콩쿠르 수상과 프로 무용단 생활을 잘하는 비결은 사뭇 다를 것 같다.

"콩쿠르에서는 영스타였는데 성인이 돼 꽃을 못 피우는 무용수가 많다. 연습실에 틀어박혀 춤만 익혔기 때문이다. 발레 바깥에서 더 많이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 한국 발레 무용수는 콩쿠르 스타일의 정답만 반복 연습해 춤이 깔끔하긴 한데 '다른 방법으로 춰보라'고 하면 막막해한다. 연습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오페라, 뮤지컬, 전시, 책, 영화도 좋다."

―10대에 경험하지 못해 후회하는 게 있다면.

"서울 예술의전당 앞을 늘 지나다녔는데 미술관엔 한 번도 못 들어갔다. 러시아 무용수들은 우리처럼 노래방·PC방에 가는 게 아니라 어려서부터 전시회·음악회 등에서 다양한 감정을 간접 경험한다. 우리는 성인이 돼서야 하니 너무 늦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엔 가끔 가나?

"아플 때 자주 갔다. 자화상만 봐도 표정과 감정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을 무대에 옮기면 춤이 풍성해진다. 에르미타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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