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일본선 '평판'으로 죽어.. 작은 욕심으로 몇백 년 家業이 자기 代에 무너져"

최보식 선임기자 2016. 9.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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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 주재 '일본 관광비전 회의' 멤버.. 여행사 여사장 이용숙] "열여덟 살에 남자와 살림.. 세 아이 낳고 13년 만에 이혼 도넛 체인점의 트럭 운전사, 일본 건너가 여행사 가이드" "300년 된 日 전통 떡 '아카후쿠', 팔다 남은 것 다음 날 다시 판매 맛 이상 없었으나 종업원 고발.. 매출 급감으로 결국 문 닫아"

이용숙(58)씨는 열여덟 살에 남자와 살림을 차려 세 아이를 낳았다. 13년 만에 이혼(離婚)했다. 그 뒤 일본계 도넛 체인점에서 배달 트럭 운전사로 취직했고 저녁에는 호텔 라운지에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하며 아이 셋을 키웠다.

1992년 일본으로 건너가 여행사 가이드 생활을 시작했다. 공항에서 단체 손님을 전송하자마자 들어오는 단체 손님을 맞았고, 마이크를 잡은 채 일본 전역을 관광버스로 돌아다녔다. 낯선 땅에서 여자 몸으로 어린 자녀를 키우며 억척스럽게 살았던 게 틀림없다. 술도 못 마시는 그녀가 일본 사케 감정자격증인 '기키사케시(きき酒師)'를 땄고, 대학원에 진학해 관광정책 석사학위도 받았다. 십몇 년 전 NHK 방송에서 그녀를 소재로 '일본 열도(列島)를 달리는 한국 여성'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 있었다.

꼭 이런 인생 역정(歷程) 때문에 일본 오사카에서 소규모 여행사를 운영하는 그녀를 만나러 간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내 앞에서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일본은 작년 관광수지에서 1조1217억엔(11조5000억원) 흑자를 냈습니다. 우리가 60억9460만달러(7조7800억원) 적자를 낸 것과 비교됩니다. 일본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 수는 2000만명, 이들이 뿌린 돈은 3조5000억엔이었어요. 3년 전에 비해 무려 3배나 증가했습니다. 2020년 관광 목표는 4000만명과 8조엔입니다. 일본 정부는 작년 11월 '내일의 일본을 이끄는 관광비전 구상회의'를 만들었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주재하는 이 회의에는 아소 다로 부총리, 스가 요시히데 관방상 등 국무대신 8명과 피치 항공 대표, 쓰루가 호텔 그룹 대표, 대표적 료칸인 가가와야(加賀屋) 사장, 규슈 철도 회장 등 민간 대표 7명으로 구성돼 있다. 민간 대표 중에 '한국인 영주권자' 이용숙씨가 들어 있는 것이다.

―참석자 명단을 보니 다들 쟁쟁한데, 어떻게 여기에 뽑혔습니까?

"여행업을 하면서 일본 지자체들을 위한 관광 상품 개발과 홍보하는 사업도 병행했습니다. 관광 온 한국인들의 문화나 습관 등을 일본인에게 이해시키려고 했어요. 지자체를 돌며 여행 가이드로서 현장에서 겪은 경험으로 강연한 게 소문이 났습니다."

―어떤 강연을 했기에 소문이 날 정도입니까?

"그때만 해도 한국 관광객들은 김치를 싸 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김치는 한국인의 영혼이다. 일본인들이 저녁에 귀가하면 한 욕조 통에 순서대로 들어가는 목욕과 같은 거다. 때를 닦는 게 아니라 하루의 피로를 푸는 영혼의 시간인 것처럼. 김치를 흉볼 게 아니라, 당신들이 종지에 김치를 내주면 한국 관광객은 그 따뜻한 마음에 감동할 것이다'고 했지요."

―좀 과장된 비유 같군요.

"그때 우리 단체 관광객들은 '기모노 속에 팬티를 안 입나?' '일본 여자들은 헤픈가?'라는 짓궂은 질문을 공공연히 했으니까요. 서로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았습니다. 저는 한국인 입장에서 일본의 관광 정책에 조언했던 셈입니다. 이미 고이즈미 총리 시절(2008년) 관광정책 자문위원에 추천됐고, '요코소 재팬(일본에 잘 오셨습니다)' 대사(大使)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내일의 일본을 이끄는 관광비전 구상회의' 멤버로 뽑힌 겁니다."

―'내일의 일본을 이끄는(明日の 日本を 支える)'이라는 표현이 흥미롭군요.

"자동차·전자제품·정밀 부품 기계 등을 팔던 일본이 '관광산업이 미래 식량'이라는 걸 깨달은 겁니다. 관광산업 하면 항공·호텔·면세점만 떠올리지만 관광의 부수 효과는 엄청납니다. 외국 관광객들이 와서 식사를 하면 쌀·생선·육류·야채·과일 등 1차 산업의 소비가 증가합니다. 쇼핑이 늘어나면 관련 제조공장이 돌아가고 고용이 창출되고, 지역 관광이 활성화되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온 젊은이들을 고향으로 유턴시켜 관광 인프라에 참여시킬 수 있어요."

―정책 회의에서 어떤 안건을 논의합니까?

"관광 규제 개혁, 관광을 통한 지방 활성화, 여행자 만족도를 높이는 환경 조성 등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지금까지 네 번 참석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발언을 했습니까?

"공공장소에서 인터넷과 와이파이 서비스, 한국어와 중국어 표기 확대를 제안했어요. 개인 및 가족 관광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다양한 가격의 열차 패스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 제안에 회의 멤버인 규슈 철도 회장이 공감했어요. 지난 4월부터 한국인들만을 위한 오사카·교토 등 간사이(關西) 지역에서 사흘간 통용되는 3000엔짜리 'JR 미니패스'를 내놓았어요."

나는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 사흘짜리 '간사이 스루 패스'를 5200엔에 샀다. 한국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3000엔짜리 'JR 미니패스'가 있다는 걸 몰랐다.

―'열차 패스'가 외국인에게만 더 쌉니까?

"열차 패스뿐만 아니라 호텔 숙박료도 그렇습니다. 호텔 요금이 관광객의 나라 형편에 따라 차등화돼 있습니다. 일본인에게 가장 비싸고, 서양인·한국인 순입니다. 호텔 입장에서는 일본인 투숙객을 받는 게 유리합니다. 이 때문에 외국 관광객을 많이 받는 호텔에 대해 정부 혜택을 더 줘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일본 주민들은 외국 관광객들의 급증에 오히려 반감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가이드를 할 때 한국 단체 관광객은 일본 호텔의 정문으로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시끄럽고 냄새난다는 이유였어요. 후문이나 지하로 들어와 식사도 정식 레스토랑이 아니라 대형 연회장에서 별도로 먹게 했습니다. 지금은 물밀듯 들어오는 중국 관광객들에 대한 일본 주민들의 반감이 없지 않습니다. 매너도 안 좋고 자기 동네에서 싹쓸이 쇼핑을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일본 신문에 '관광 수입이 들어오면 쓰레기나 나쁜 매너도 함께 따라오는 걸 감수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그래도 일본인은 관광객을 상대로 터무니없이 바가지요금이나 속임수를 안 쓰는 것 같습니다.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호텔 숙박료 등을 조금씩 올리고 있지만 상식 밖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바가지나 속임수를 쓴 게 보도되면 문 닫아야 합니다. 호텔의 주 고객인 일본인들이 외면해버리니까요. 300년이 된 일본의 유명한 전통 떡인 '아카후쿠(�福餠)'는 그날 팔다 남은 걸 냉동실에 넣었다가 다음 날 다시 팔았습니다. 맛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종업원이 고발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매출이 급감했고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종업원이 고발했다고요?

"종업원을 '내부 고객'이라고 합니다. 고급 전통요릿집인 '깃조(吉桃)'는 접시 바닥에 까는 장식용 잎사귀를 씻어 재사용했습니다. 종업원이 폭로했습니다. 본사에서 이를 무마하려고 했으나 또 다른 내부 고발에 의해 일이 커졌습니다. 결국 그 음식점도 폐업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사건이 터지면 세상 난리 난 것처럼 시끄럽다가 좀 지나면 없었던 일처럼 잊힙니다.

"일본에서는 '평판'으로 살고 죽습니다. 몇백 년 된 가업(家業)이 작은 욕심으로 자기 대(代)에서 무너진다고 생각해보세요. 조금 더 이익을 보겠다는 유혹을 이겨낼 수밖에 없지요 이게 일본 전통산업의 특징입니다."

―개인이나 조직, 국가에도 '신뢰'가 중요한 겁니다.

"과거에 한국 관광객들이 중국에 가면 필수 쇼핑 코스가 우황청심환 등을 파는 '동인당(同仁堂)'이었습니다. 지금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에서 가장 많이 사는 게 무엇인 줄 압니까? 약(藥)입니다. 자기 나라 것은 믿을 수 없다며. 전 세계에 심어놓은 일본인들의 매너와 신뢰 브랜드가 관광산업 발전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요즘 일본의 막대한 관광 흑자는 일시적 '엔저 현상'으로 봐야 하지 않나요?

"엔저 현상만은 아닐 것입니다. 면세 제도, 저가 항공 증편, 풍부한 관광자원, 그동안 쌓아놓은 국가 브랜드와 일본인의 친절 등이 작용했습니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관광을 '국가산업'으로 인식해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 상반기 일본을 찾은 한국인이 238만명, 반면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5만명이었습니다. 이런 마당에 일본 관광 진흥을 위해 일하는 이 선생을 인터뷰하는 게 좀 불편한 기분은 들군요.

"1억2000만명의 일본 인구 중에서 105만명이라면 일본 관광객들이 거의 한국에 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혐한(嫌韓)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제가 회의에 참석해 '양국 간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일본인들이 더 많이 한국에 갈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노력해줘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인구의 10%가 왔다 갔다 합니다. 한·일 간에는 아직 3.4%밖에 안 됩니다."

―외국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한국 관광 자원의 강점은 뭐라고 봅니까?

"관광 자원이 한류와 쇼핑 등에 국한돼 있습니다. 제가 일본 관광 정책 회의에서 '외국 관광객들이 일본의 현대 문화나 명승지도 좋아하지만 일본을 찾는 진짜 이유는 몇 대(代)째 이어오는 장인 정신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지방에 있는 술도가, 간장공장, 소바나 우동집 같은 곳을 개발해야 한다. 술도가 투어 상품을 개발하면 지방까지 활성화된다'고 발언했습니다."

―그거야 다 알고 있는 일본의 관광 자원 아닙니까?

"일본인은 작고 오래된 것을 존중해왔지만 이게 관광 자원이라는 걸 인식 못 했어요. 소면(素麵)을 반죽하고 뽑고 말리는 것은 일상인데, 이게 왜 외국인들에게 신기한 관광 상품이 되는지 모르는 겁니다. 한국도 '전통'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6·25 전란과 급격한 도시화로 과거의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가령 경주나 안동의 하회마을에서는 한옥 숙소를 짓고 관광객들에게 한복을 입혀 가마나 달구지에 태우거나, 남원의 한식집에서는 춘향과 이도령의 풍류를 재현해 실질적으로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걸 개발해야 합니다."

다음 날 경주의 자매 도시인 교토(京都)에 가니 여성 관광객들이 기모노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교토에서는 으레 그렇게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골목에 한번씩 출현하는 '게이샤'도 관광 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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