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이웃 묘 20여기"..10년째 무료 벌초 옥천 황응기씨

2016. 9. 4.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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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나이에도 거동 불편한 이웃 대신해 예초기 둘러메고 산 누며 산비탈 구르고 땅벌에 쐬어 병원신세.."남 도우니 내 몸이 편해"

칠순 나이에도 거동 불편한 이웃 대신해 예초기 둘러메고 산 누며

산비탈 구르고 땅벌에 쐬어 병원신세…"남 도우니 내 몸이 편해"

(옥천=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지난 3일 오후 충북 옥천군 옥천읍의 한 야산.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 속에 작업복 차림의 한 남자가 요란한 소리의 예초기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부지런히 묘지 주변의 풀을 깎았다.

안전모와 두툼한 작업화로 중무장한 모습에서는 '전문가 포스'마저 느껴졌다. 제멋대로 자란 잡초로 뒤덮였던 묘지는 그의 손길이 닿자마자 밤톨을 깎아놓은 것처럼 깔끔해졌다.

"힘들어도 이 맛에 하는 거여. 누군지는 몰라도, 저 안에 누워 계신 분도 좋아하지 않겠어"

추석마다 이웃의 벌초를 대신해줘 '벌초 천사'라고 불리는 황응기(72)씨는 봉사의 즐거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가 남의 조상 묘 벌초에 나선 것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친 묘를 돌보러 갔다가 잡초 속에 묻혀 방치되다시피한 이웃 노인의 아내 묘를 손질해준 것이 계기가 됐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노인이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본격적인 '벌초 대행'에 나섰다.

벌초를 하고 싶어도 몸이 불편하거나 고된 일상에 지쳐 그럴 수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안 그는 이듬해 추석부터 작심하고 예초기를 둘러멨다.

처음 5∼6기로 시작된 벌초 봉사는 해마다 늘어나 지금은 돌보는 묘소가 20여기에 달한다.

홀로 수풀 우거진 묘지를 누비는 험한 작업이다보니 위험한 상황을 맞이한 적도 있다. 몇 해 전 산비탈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했고, 벌떼의 공격을 받아 사흘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한 해도 벌초 봉사를 거른 적이 없다.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한 이들이 이따금 사례금을 들고 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봉사하기로 마음먹은 이들한테는 절대로 대가를 받지 않는다.

대신 출향인들이 정식으로 벌초 대행을 의뢰하면 남들과 비슷하게 비용을 받고 벌초를 한다.

애초 돈을 벌려는 욕심에서 나선 벌초가 아니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의뢰인이 늘어나면서 몇 년 전부터 기름값이라도 조달하려고 시작한 일이다.

젊은 시절 그는 목수였다. 공사판에서 잔뼈가 굵어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에다가, 예초기 등 기계 다루는 데도 능하다.

원예기술사 자격까지 있어 벌초 솜씨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그는 "젊은 시절 다리를 다쳐 겨울마다 고생했는데, 벌초 봉사를 시작하면서 아픈 게 사라졌다"며 "남을 도우면서 오히려 내가 얻는 게 더 많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어 "유교사상이 강한 사회다 보니 조상 묘를 돌보지 못하면 죄를 지은 것 같이 부담을 느낀다"며 "벌초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고, 큰돈 드는 게 아니어서 힘닿을 때까지 봉사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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