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아파트 관리회사는 '허수아비'에 불과.. 관리소장도 임명 못 해"

최보식 선임기자 2016. 8.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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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부조리의 內幕 고발하다.. 이상정 무림하우징 회장] "아파트 관리 문제는 대한민국의 속병이오.. 이 사각지대를 외면해선 안 돼" "입주자 대표에게서 관리소장이 봉급 받는데 그 독주와 부정·비리를 견제할 수 있겠나"

"아파트 관리 문제는 대한민국의 속병이오. 이 사각지대를 외면해선 안 됩니다. 서울시 공무원 시절에 주택건설촉진법 등 아파트 관계 법령을 입안했던 사람의 충정(衷情)을 이해해주십시오. 요즘 공무원은 우리 국민의 70%가 사는 아파트의 근본 문제에 관심이 없고, 무사안일의 표본입니다. 내 마지막 기대를 걸고 찾아왔습니다."

아파트위탁관리회사인 무림하우징의 이상정(81) 회장이 열변을 토하는데 알아듣기 어려웠다. 같은 얘기를 중언부언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경청할 만했다.

그는 서울시 공무원에서 퇴직한 뒤인 1982년 가락시영아파트에 대한 시범관리 사업을 맡았다. 그 뒤 '한국공동주택(아파트) 전문관리업체'를 창립해 초대 회장으로 뽑혔다. 팔순이 된 지금까지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

"각종 아파트 비리가 터질 때마다 여러분(기자를 지칭)은 근본 원인과 대안 없이 폭로 기사만 썼지, 아파트 관리 내막(內幕)에 얼마나 요지경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가 아파트 주민인데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까?

"주민으로서 왔다 갔다 해봐야 그 속을 몰라요. 아파트 비리와 부조리를 낳는 구조적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압니까. 내가 하는 아파트위탁관리회사가 '허수아비'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명색이 아파트를 책임 관리하는 게 역할인데, 현실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아파트 관리를 맡은 회사가 '허수아비'라는 게 무슨 말입니까?

"계약 서류상으로만 아파트 관리 주체일 뿐, 아파트 관리에 대한 발언권이 전혀 없습니다. 딱 하나 있다면 아파트 관리소장을 추천하는 게 전부입니다. 임명하는 것도 아니고…."

―관리를 위탁받은 회사에서 아파트에 관리소장을 파견하는 게 아닌가요?

"서류상 아파트 관리소장은 관리회사 소속입니다. 우리가 관리소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그런 뒤 계약한 아파트에 파견하도록 되어 있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관리소장 후보 서너 명의 이력서를 아파트 입주자대표에게 보내면 그쪽에서 결정합니다. 관리소장의 봉급과 4대 보험료도 입주자대표에게서 나옵니다. 여러분은 이런 내막을 모릅니다."

―그렇다고 입주자대표가 관리소장을 채용하는 시스템에도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이게 왜 중요한가요?

"관리소장이 누구 말을 듣겠습니까? 서류상 관리회사에서 파견된 것으로 돼 있지만, 입주자대표 쪽 식구입니다."

―입주자대표 쪽 식구라면?

"본사의 말은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겁니다. 관리소장 회의를 위해 본사에서 불러도 '바쁘다'며 오지 않습니다. 관리소장에 대해 업무상 지휘·감독이 전혀 안 되는 거죠."

―관리소장을 조직 체제하에 두지 못해 불만스러운 겁니까?

"관리소장이 입주자대표의 로봇이고 을(乙)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그걸 그렇게 봅니까?

"관리소장이 입주자대표에게서 봉급을 받는데, 그러면 입주자대표의 독주와 부정·비리를 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관리소장이 입주자대표의 말을 안 들으면 '당신과 해약(解約)하겠다'고 위협합니다. 이 시대의 속병인 아파트의 모든 문제가 여기서 출발합니다."

―입주자대표는 으레 부정과 비리를 일삼는 것처럼 말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견제받지 않는 독주(獨走)는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관리소장은 입주자대표의 심부름만 하고, 서류상 '관리 주체'인 회사는 이름만 걸어놓고 실상 아파트 관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관리회사는 입주자대표와 책임과 의무를 공유해야지, 지금은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습니다."

―관리회사는 위탁관리 수수료를 받고 있는 만큼 책임도 있지 않나요?

"이 수수료라는 게 아파트 비리가 터질 때마다 관리회사에 책임을 묻기 위한 보험료처럼 됐습니다. 아파트 관리 권한이 전혀 없는데 무슨 일이 터지면 관리회사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사흘이 멀다 하고 경찰서를 들락거립니다. 이런 문제를 관청 공무원들에게 얘기하면 '위탁받았으니 책임져야 한다'는 사무적인 답변만 돌아옵니다. 현장 실태를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아요."

―아파트 단지당 위탁 수수료를 얼마쯤 받습니까?

"전국에 600개 아파트 위탁관리회사가 등록돼 있습니다. 공개 입찰에서 과당경쟁이 되니 상상을 초월합니다. 거의 무료 수준입니다."

―거의 무료라는 뜻은?

"아파트 단지마다 달라지지만 평균 1㎡당 수수료가 1원 내지 2원입니다. 가령 서울 강남에 있는 1350가구 규모의 A아파트는 한 달 관리비로 4억~5억원을 쓰지만, 위탁 관리 수수료는 월 20만원입니다."

―월 20만원?

"우리 회사가 매달 20만원씩 받고 그 대형 아파트 단지의 관리를 맡고 있는 겁니다."

―그런 과당경쟁을 원치 않으면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한 건이라도 더 해야 업계에서 이름을 올리니까, 실적이 있어야 회사 명함을 내미니까, 빼도 박도 못하고 하는 겁니다(업계 8위인 그의 회사는 280개 아파트 단지를 위탁 관리해 연간 영업이익이 수천만원 선이라고 했다)."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불만이겠지만, 어쨌든 수요와 공급 시장에서 위탁 수수료가 결정된 게 아닙니까?

"아파트 건축만 했지, 정부 당국은 국민 생활과 가장 직결되는 아파트에 관한 법령이나 규정·제도를 만들어놓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중개 수수료도 표준율이 정해져 있는데, 위탁 관리 수수료에는 그런 제도가 없어 관리회사들끼리 부실한 과당경쟁이 붙게 된 겁니다. 공개 입찰에서 딴 뒤 2년간 관리 계약이 끝나면 입주자대표가 '계약을 연장시켜주는 대신 10개월치는 사례를 해달라. 다른 업체에서는 1년치를 주겠다고 했다'고 요구합니다."

―10개월치 사례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하늘 위에 있는 여러분은 바닥 세상을 몰라요. 재계약하고 싶으면 위탁 수수료 10개월치를 '리베이트'로 달라는 겁니다. 기껏 월 수수료 20만원, 30만원인데 이런 뒷돈을 요구하는 겁니다. 입주자대표와 총무 선에서 받는 겁니다. 창피해서 어디에 이런 말을 못 합니다."

―실제 아파트 관리를 하고 있지 않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그런 월 수수료 20만원도 '공돈' 아닙니까?

"300세대 이상 아파트는 법적으로 자치를 할지 위탁을 할지 관리 주체를 정하도록 돼 있습니다. 위탁 관리로 정했으면 관리회사에 권한과 책임을 줘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아파트 운영은 입주자대표가 일방적으로 합니다. 관리회사는 관리 권한은 없고 비리 사건이 터질 때 책임만 떠맡습니다."

―위탁 수수료가 일종의 보험료인가요?

"이게 '보험료'라 해도 너무 싸지 않습니까. 한때 아파트 단지마다 주민 대표가 관리소장을 채용해 직접 운영하는 '자치 관리' 바람이 불었습니다. 막상 해보니 공금 횡령 등 여러 내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뒷감당을 해줄 대상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자치 관리를 하던 아파트들이 대부분 위탁 관리로 돌아선 겁니다. 현재 아파트 단지의 75% 이상이 관리회사에 위탁을 줍니다. 관리회사를 일종의 보험사로만 생각하는 겁니다."

―아파트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어떻게 뽑습니까?

"관리소장이 과장급 이상 직원을 채용할 때 본사의 동의를 받게 돼 있습니다. 관리소장도 감독을 못 하는데 무슨 의견을 내겠습니까. 이 시대의 속병인 아파트 문제를 풀려면 적어도 관리소장 및 직원들의 급료는 관리회사가 지급하도록 계약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부 입주자대표가 '관리'라는 명목으로 행하는 각종 이권 개입을 막을 수 있습니다."

―아파트 관리에 그렇게 많은 이권(利權)이 있습니까?

그는 준비해온 서류를 보여주며 읽어 내려갔다.

"대형 아파트 단지는 시·군과 같은 기초자치단체의 인구 규모가 됩니다. 경비·청소·소독·조경·엘리베이터·보일러·소방시설·전기안전·CCTV·주차차단기·방수·열교환기·저수조 청소·정화조 관리·건축물 안전 진단·회계 전산 관리·자전거 보관대·주차장·어린이 놀이터 관리·장기 수선 계획 등은 기본입니다. 이게 모두 외부 업체와 관련돼 있습니다. 여기에 재활용품 수거·알뜰시장 운영·음식 쓰레기 수거·커뮤니티 시설 위탁 운영 등에도 따로 용역 계약을 합니다. 이를 이권으로 보면 다 이권이 됩니다."

―너무 극단적으로만 말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시스템이 입주자대표를 잡다한 이권 문제에 전횡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공사비 액수를 부풀리고 업자를 선정해 뒷돈을 받는다든지…. 어느 입주자대표는 관리소장 곁에 하루 종일 앉아 상사처럼 일일이 간섭합니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것은 여러분의 상식을 뛰어넘어 희한하게 장난칩니다."

―희한한 장난이라면?

"어느 입주자대표는 특정 업체에 용역을 주기 위해 공모 내용 문안까지 고칩니다. 또 경쟁 입찰을 피하고 특정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가령 1억원짜리 용역을 수의계약으로 가능한 300만원 단위로 쪼개서 계약을 해요."

―주민 대표 모임에서 자체 감사(監査)를 하지 않습니까?

"서로 한통속이 되거나, 아니면 견제한다면서 사분오열이 되기 일쑤입니다. 전·현직 대표들끼리는 서로 '얼마나 해 먹었나'는 식으로 반목과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입주자대표는 주민들이 뽑았고 자기 시간을 써가며 봉사하는 역할이 아닙니까?

"입주자대표들은 잡일이 많습니다. 어떨 때는 자기 돈도 써가면서 합니다. 정식 보상은 없어요. 차라리 행정구역의 통·반장 대우의 급료를 주는 게 책임감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제도를 안 바꾸면 이 시대의 속병을 고칠 답이 없어요. 일본·싱가포르·미국의 경우에는 전문 관리회사에 총액 도급제로 아파트 관리를 맡겨버립니다."

그가 아파트관리회사를 운영하는 이해당사자라 공정성에는 약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난봄 정부 합동부패척결추진단이 전국 아파트 8319개 단지의 회계감사 실태를 점검한 결과 5곳 중 1곳에서 관리비 횡령·금품 수수 등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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