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뉴스]자전거 2천대 남기고 떠난 '가스통 아저씨'

손대선 입력 2016. 8.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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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폐자전거를 수리하는 생전의 설동춘 특수임무유공자회 중구지회장. (사진 = 중구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최근 중구민들은 한 사람의 죽음에 깊은 시름에 빠졌다.

자전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던 한 구민이 지난 21일 안타깝게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구민들의 애도를 한몸에 받고 있는 사람은 특수임무유공자회 중구지회장을 맡았던 고(故) 설동춘씨.

특수임무유공자회라는 이름은 곧 '가스통 아저씨'와 같은 의미로 읽힌다.

설씨는 실제로 북파공작원 출신이다.

하지만 그는 자원봉사를 통해 북파공작원 출신들에게 덧씌워진 '가스통 아저씨' 이미지를 벗을 수 있도록 노력한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설씨는 51년생으로 금호동에서 태어나 중구 신당동에서 산 중구토박이다.

20살 때 군 입대를 기다리던 중 정보기관 물색조의 감언이설에 속아 강원도로 가 고된 훈련받았다.

1976년 군대에서 제대한 설씨 앞에 남은 것은 당국의 감시뿐이었다.

직장에 다니기가 힘들었고, 어렵게 직장에 들어가도 계속되는 감시에 며칠 못가 그만 두기 일쑤였다. 70년대말 중동에 가서 한몫 잡을 수 있었지만 당국의 불허로 중동행이 무산됐다.

가진 것은 오직 건강한 신체 뿐.

설시는 다행히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어 약수동에서 20년 동안 표구점을 운영했다.

80년대 중반에는 현대미술제에서 금상을 받는 등 화가의 길로 들어설 뻔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손을 다친 후 표구상을 접었다.

그는 군대에서 배운 것을 밑천 삼아 구리에서 한강정화특수단을 7년 동안 운영하기도 하였다.

주변의 냉대를 받던 설시는 2000년대 들어서 북파공작원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명예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연락이 닿은 중구 지역 거주 동료들과 함께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특수임무유공자회 중구지회를 만들어 2008년 말부터 청소년 선도 봉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적 논란이 있을 때마다 북파공작원 출신들이 했던 방식 때문에 주민들에게 '보수꼴통 가스통 아저씨들'이라는 곱지않은 시선을 받는 것은 설씨도 부담스러웠다.

설씨는 어떻게 하면 주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댄 끝에 자전거를 통해 소통을 해보자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당장 중고 자전거나 부품을 살 수 있는 돈이 없어 중구 관내 공사장을 찾아가 고물을 수집해 팔았다.

처음에는 설씨의 험상굳은 인상 때문에 오해를 받았다. 공사인부들에게는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사인부들도 그의 진심을 이해한 후부터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1주일 내내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열심히 고물을 실어 날랐고, 고물 판 돈으로 자전거 부속과 장비를 구입했다.

서울 변두리 고물상에서는 헌 자전거를 하나 둘씩 구입했다. 그리고 주택가, 도로변 등에 무단 방치된 폐자전거나 고장난 자전거를 절차에 따라 수거하기도 했다.

구입하거나 수거한 헌 자전거들은 을지로4가 중부시장 인근 콘테이너박스 한켠에서 수리했다. 녹이 슨 것은 녹을 깨끗이 제거한 후 광을 냈다.

그렇게 작업한 친환경 자전거 150대를 지난 2009년 7월24일 중구청을 통해 저소득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기증식이 열린 날 눈물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설씨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했다고 전해진다.

힘을 얻은 설씨는 또 열심히 일 해 다음 해인 2010년 7월30일, 중구 각 직능단체에 친환경 자전거 180대를 무료 기증했다.

주민들의 반응이 좋자 이들은 각 학교로도 범위를 늘려 2010년 관내 6개 중·고등학교에 친환경 자전거 43대를 무료로 기증했다.

이 자전거는 각 학교 저소득자녀 학생들에게 제공되어 통학을 위한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장충고등학교와 한양공고에서는 설씨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작은 선행은 곧이어 더 큰 선행으로 이어졌다.

이런 친환경 녹색운동 실천으로 구청의 도움을 받아 2010년 10월 8일 중구 을지로4가 169-5번지에 '자전거 무료이용 수리센터' 문을 열었다.

센터에는 자전거 전문 수리기술을 갖춘 총 10명의 기술자들이 상주하면서 자전거 타이어 펑크, 경정비 등을 무상으로 수리해 주었다.

동주민센터 및 관내 아파트 단지를 순회하면서 하루 평균 30∼50대의 자전거 무상수리 활동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친환경 자전거 보급해온 노력을 인정받아 2011년부터 구청에서 예산을 지원받으면서 고물상을 전전하는 일도 끝냈다.

이처럼 설씨의 활약상이 언론 등에 보도되면서 부정적이었던 북파공작원들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어지는 계기가 됐고,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에서는 그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설씨가 기증한 자전거는 무료 2000여대에 달한다. 기증한 곳도 동주민센터, 직능단체, 중고등학교, 어린이집, 노인회, 중부시장 상인연합회 등 다양하다. 금액으로 따져도 15만원씩 계산해 3억여원에 달한다.

하지만 고생이 결실을 맺고 있을 무렵인 5년 전부터 설씨는 식도암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술도 끊고 병원에 가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설씨의 마음은 센터로 향했다.

설씨는 생전에 "우리가 기증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힘이 나요. 그래서 병과 싸워 이겨 다시 일어나 센터에 나가 자전거를 수리해 이웃 주민들에게 기증할 거에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몸 상태는 더욱 더 나빠졌고, 지난 7월11일 중구구민회관에서 열린 친환경 자전거 전달식은 설씨가 마지막으로 참석한 행사가 되고 말았다. 몸을 가누기 힘들면서도 이날 설씨는 120대를 기증했고, 특수임무유공자회 중구지회장 자리도 후배에게 넘겨 주었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겉모습은 곰같지만 속은 소녀같은 분이었다. 인정도 많아 그를 만났던 구청 직원들이나 주민들이 다 그를 좋아했다. 자전거로 사랑을 전달한 그의 숭고한 뜻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sds110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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