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신 배달하다.. 야쿠르트 점장 됐어요"

2016. 8.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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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동료가 된 母子 현상희-심승기씨최근 10년 제품 줄줄이 외워.. 면접때 뛰어난 실력으로 입사함께 출근하는 車안에선 고객-판촉 '고급정보' 주고받아요
[동아일보]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필수품인 전동카트 앞에서 하트를 그리며 함께한 현상희 씨(오른쪽)와 심승기 씨 모자.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0년 전 어느 겨울날, 고등학생이던 심승기 씨(27)는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로 ‘출근’했다. 매일 새벽 야쿠르트를 배달하다 몸살이 난 어머니 현상희 씨(58)를 대신해서였다. 집집마다 들러 깍듯하게 인사하는 심 씨를 고객들은 “효자가 났다”며 칭찬했다. 심 씨를 ‘야쿠르트 아저씨’라고 부르며 좋아하던 아이들도 있었다. 최근 만난 심 씨는 “추운 날 꽁꽁 언 손으로 야쿠르트를 배달해 보고 나서야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깨달았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머니 현 씨는 2002년부터 고객의 손에 발효유를 전하는 야쿠르트 아줌마로 일했다. 아침잠이 많은 아들은 매일 오전 5시 30분에 집을 나서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들이 눈을 떴을 때 식탁에는 어머니가 차려 둔 아침밥이 놓여 있었다. 아들은 ‘굳이 이런 일을 해야 하나’라며 철없이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직업에서 영향을 받아서일까, 한국외국어대 중앙아시아학과를 나온 아들은 지난해 7월 한국야쿠르트에 입사했다. 대학생 시절 다른 회사에서 인턴 직원으로 일해 보고, 여러 회사에 지원해 봤지만 한국야쿠르트 입사 과정에서 특히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어머니 덕에 최근 10여 년 사이 나온 제품들을 모두 외울 정도로 회사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 씨는 “어머니를 따라 야쿠르트를 배달하다 보니 회사 ‘영업 비밀’까지 알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아들은 올해 3월에 야쿠르트 서울 강남구 개포점 점장이 됐다. 어머니 같은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관리가 점장 업무의 일부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인사하는 어머니를 닮았는지 인사성이 밝다는 평가를 듣는다. 지점에서 일하는 20명의 아줌마에게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자주 건네는 ‘천사 점장’으로도 통한다. 그가 점장을 맡은 뒤 지점의 월평균 매출이 지난해보다 15% 올라 능력도 인정받았다.

모자는 요즘 출근길이 즐겁다. 아들이 최근 구입한 자동차를 타고 함께 출근한다. 아들은 어머니를 근무처인 서울 송파구 석촌점에 먼저 내려주고 직장으로 향한다. 출근길 차 안에서는 고객과 신제품, 그리고 판촉 방법에 대한 ‘고급’ 정보 교환이 이루어진다. 심 씨는 “야쿠르트 아줌마로 일하며 제대로 챙겨 주지 못했는데, 든든한 직장 동료로 자라 준 아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한국야쿠르트에는 현재 1만3000여 명의 야쿠르트 아줌마가 일하고 있지만 함께 근무하는 모자는 현 씨와 심 씨뿐이다. 한국야쿠르트 측은 “한 회사에 부자가 함께 다니는 경우는 있어도 모자가 함께 하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두 분이 회사에 즐거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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