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과 3층 높이 파도 뚫고 지구 한 바퀴

박돈규 기자 2016. 8. 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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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요트대회 완주 김한울씨] 240명 중 유일·최초의 한국인, 돛과 풍력을 이용해서만 경주 "1년간 달리는 마라톤 같아.. 자연 앞 겸허해지고 성취감도 유명 요트대회 한국 유치 꿈"

한국인이 1년 동안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클리퍼(Clipper) 세계일주 요트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하고 돌아왔다. 김한울(42)씨는 지난해 8월 30일 영국 런던을 출발해 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호주~중국~미국~네덜란드 등을 거쳐 지난 7월 30일 런던 선착장에 닿았다.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다부진 체구였다. 오랫동안 밧줄을 잡은 뱃사람처럼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요트 12척이 망망대해를 향해 출발했는데 세계를 일주하는 동안 바다에 빠지는 사고로 두 명이 사망했어요. 태풍과 높은 파도, 추위와 더위를 견뎌야 하는 위험한 레이스였습니다.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면서 자신감도 붙었어요. 적지 않은 나이에 1년을 투자했지만 충분히 보답받았습니다."

클리퍼 요트대회는 1995년 세계 최초로 무기항하며 지구를 한 바퀴 돈 영국 요트 선수 로빈 녹스-존스턴(77)이 더 많은 사람에게 세계일주 기회를 주기 위해 창안했다. 동력은 쓰지 않고 돛과 풍력을 이용해 경주하지만 중간중간 기항한다. 김한울씨는 "자연의 힘을 전략적으로 이용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를 만든다는 게 매력적이었다"며 "지난 1년간 넓고 큰 세상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연세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미국 위스콘신대 개발경제학 박사과정 휴학 중이다. 현재 직업은 스포츠 프로모터. 요트는 23년 전 학부 시절 요트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취미에 빠져 너무 멀리 간 것 아닐까. 김씨는 "토목공학에서 유체역학을 배웠고 유한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쓰는 게 경제학"이라며 웃었다.

"국가대표도 아니고 세일링이 전업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마추어도 동력 없이 세계를 일주하는 기회를 잡고 싶었어요. 스스로 큰 도전을 하면서 해외에 한국인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요트는 38t에 길이가 23m였다. 순풍을 받으면 시속 약 60㎞로 바다 위를 달렸다. 그는 "태풍과 3층 높이 파도를 뚫고 북태평양을 가로지른 구간이 가장 난코스였다"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태풍을 이용하면서 항해하는 전략을 폈다"고 했다. 이번 클리퍼 세계일주에는 요트 한 척당 약 20명씩 모두 240명이 출전했다. 한국인은 한 명뿐이었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속출했다. 김씨는 "단념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7만4000㎞를 완주하고 나니 어떤 극한을 경험했다는 성취감이 크다"고 말했다.

무동력 세계일주는 내해(內海)에서 타는 요트와는 사뭇 다르다. 쉬지 않고 달리는 마라톤과 같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는 그는 "목표도 성향도 다른 다양한 사람이 협동해야 하기에 심리적인 고통이 더 컸다"고 설명했다. "20명을 5개 조로 나눠 24시간 쉬지 않고 항해했어요. 와치리더(부선장)도 맡아서 서양인들을 독려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적재적소에 인원을 배치하고 설득하고 지휘하면서 리더십을 깨달았어요."

호주 근해에서 새해를 맞았다. 날마다 새로운 일출과 일몰을 감상했다. 요트 위로 들어온 날치들을 구워먹기도 했다. 총 14개 경주 구간 중 파나마~뉴욕 구간에서는 1위를 차지했고 기항지에서는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한 배를 타고 서로 생일을 챙겨주면서 동지애는 더 끈끈해졌다고 한다.

김씨는 "한 번 사는 인생, 많은 걸 경험하며 즐겁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장차 계획을 물었다. "유명한 요트대회를 한국에 유치하고 한국팀을 꾸려 해외 원정으로 국위선양도 할 것"이라며 "국제적인 감각과 안목을 키우는 데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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