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공연할 생각에 잠도 안 와요"
"좀 전에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빤히 쳐다보더니 제 옆자리에 와 앉고는 '사인 좀 해달라'는 거예요. 고국을 떠난 지 꽤 됐는데, 아직 절 많이들 기억해 주시네요."
발레리나 박세은(27)이 활짝 웃었다. 지난 1월 프랑스 파리에서 만났을 때 얼굴에 살짝 비치던 수심(愁心)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마의 흉터도 거의 사라졌다. 2011년 한국 발레리나 최초로 세계 정상급 파리오페라발레단(BOP)에 들어갔고, 2년 만에 쉬제(3등급)로 승급해 한국의 많은 후배에게 '꿈'이 됐던 박세은이었다. 지난해 연습 도중 얼굴 부상을 당했고 승급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걱정했지만, 본인은 빨리 액운을 털어버린 것이다.
"이번에 귀국한 거요? 우리나라에서 공연하려고요. 진짜 오랜만이죠." 그는 오는 12~13일 서울국제문화교류회 주최로 열리는 '제13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월드갈라'(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이상은(독일 드레스덴젬퍼오퍼발레단), 시묜 추딘(러시아 볼쇼이발레단) 등과 함께 무대에 선다. 같은 BOP 단원인 미카엘 라퐁과 호흡을 맞춰 전설적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가 안무한 BOP 버전의 '돈키호테' 3막 결혼식 파드되(2인무)와 컨템퍼러리 작품인 '라 뉘 사셰브(끝나가는 밤)'를 선보인다.
박세은에게는 이번 공연이 평생 잊지 못할 무대가 될 이유가 있다. '라 뉘 사셰브'는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3번 '열정' 2악장에 맞춰 추는 작품인데, 피아니스트는 최혜영(55)씨, 바로 박세은의 어머니다. "원래 피아노를 치셨고 지금도 피아노 학원을 하세요. 여태 저를 뒷바라지하시느라고 무대에 서진 못하셨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늘 엄마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자랐는데, 무척 감정을 많이 담아서 치신다"고 했다. 피아니스트를 누구로 할지 고민하다가 '엄마!'라는 생각이 났다고 한다. "대학생 때 콩쿠르 참가한 뒤로 처음이라며 겁을 내시더라고요, '엄마 괜찮아요'라고 용기를 북돋워 드렸죠." 딸이 승급 심사에서 고배를 마셔 좌절하자 '세은아, 인생은 마라톤이야'라는 문자를 보냈던 다정한 엄마다. "엄마랑 같이 공연할 생각을 하니 기대가 돼서 잠도 잘 오지 않아요, 하하."
올해 '브람스 쇤베르크' '저스틴 펙' 같은 BOP의 네오클래식 작품에서 주역을 맡느라 바빴던 박세은은 또 한 차례 국내 팬들의 걱정을 샀다. 그에게 '넌 미래의 에투알(1등급 무용수)'이라고 했던 벵자멩 밀피예 BOP 예술감독이 지난달 사퇴한 것. "괜찮아요. 제 앞길은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라 제가 가는 거잖아요." 오히려 새 예술감독 오렐리 뒤퐁 체제에선 자신이 선호하는 클래식 작품으로 돌아갈 기대를 하고 있다. "내년 2월에는 '백조의 호수'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세계적으로 한국 발레 무용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물음표를 많이 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건 왜 이럴까, 그냥 넘기지 않고 끊임없이 파고들다 보면 어느새 남들과 다른 무용수가 돼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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