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신세계 그 자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뉴욕/최보윤 기자 2016. 8. 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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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소주' 만드는 '뉴요커' 브랜든] 한국 대학서 막걸리 수업 듣고 1년간 각 지방 돌며 양조법 배워 "뉴욕서 韓食 인기인데 술은 없어.. 전통 방식으로 직접 제조 한국 찾았던 2011년이 토끼해, 기념하려 '토끼'로 이름 지었죠"

"뉴욕에서 전통 소주를 만들었더니 한국인들로부터 '고맙다'는 이메일이 수도 없이 날아들었어요. 한국인들에게 고마웠던 건 저인데 말이죠. 매일매일이 감동이에요."

가방에서 소주병을 주섬주섬 꺼내던 남성의 하얀 얼굴에 붉은 달이 떴다. 자신이 만든 '토끼 소주' 로고에 그려져 있는 달을 가리키며 "한국에서 들었던 옥토끼 전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했다.

미국 뉴욕에서 전통 방식의 소주를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선보인 '뉴요커' 브랜든 힐(Hill·32). 스물한 살 때부터 양조법을 배우기 시작해 진, 럼, 보드카 같은 증류주와 다양한 방식의 맥주를 만들어냈다. 전 세계 70여 국을 다니며 그 나라의 문화와 술을 체험했다는 그는 2011년 한국에 왔다가 한국 술에 빠지게 됐다. "영어 강사를 하면서 경기대학교 수수보리 아카데미에서 막걸리 제조 방법을 배웠어요. 처음 맛본 막걸리의 맛은 신세계 그 자체였죠. 술맛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는 한국의 술 문화도 신선했어요. 삼겹살, 주꾸미, 파전…. 안주는 또 왜 그렇게 맛있는지. 이런 나라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는 게 이상한 일이죠!"

술을 통한 '스토리 텔링'도 인상적이었다. 전통주를 빚을 때 맑게 떠오른 부분을 청주라고 불러 웃어른에게 먼저 올리고, 나머지 탁주는 서민들이 일하고 나눠 마신다는 것도 술을 통해 공동체가 하나가 된다고 느꼈다. 1년간 막걸리 수업을 들으면서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등 전국을 다니며 지역 술 만드는 법을 배웠다. "안동 소주를 처음 마셨는데, 향과 깨끗함이 남달랐어요. 소주는 초록색 병만 있는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충격이었죠."

뉴욕에서 한국 음식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데 반해 함께할 술이 마땅치 않다는 게 항상 불만이었다. 맥주만 해도 가격대와 맛이 다른 게 수십·수백 가지인데 어째 한국 술은 그렇지 못했다. 사케를 마시자는 친구들에게 "그 나라 음식은 그 나라 술과 함께하는 게 가장 맛있다"며 한국 술을 찾아다녔던 그다. 하지만 한국 전통주를 뉴욕에 가져오기엔 수량도 적고 정식 수입 과정도 복잡했다.

브랜든은 직접 전통 방식의 소주를 만들기로 했다. 호기심 많고 언제나 질문으로 가득 찼던 그가 한국 전역을 다니며 배운 제조법을 써먹게 된 것이다. 물과 효모, 쌀로만 만들고, 누룩을 띄워 발효하는 과정 모두 그 혼자 한다. 한국을 찾았던 2011년이 토끼해여서 '토끼'라는 이름을 지었다. 전통 민화나 설화에 나오는 토끼는 역동적이고 지혜로우며 강인했다. 직물 디자인이 주업(主業)인 브랜든은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친구와 함께 로고를 만들었다. 한국 전통 산수화의 낙관이 마음에 들어 로고 오른쪽 밑에 술이란 뜻의 '酒(주)'라는 붉은 도장도 찍었다.

지난 2월 첫선을 보인 뒤 뉴욕 맨해튼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정식'을 비롯해 한식당 '오이지' '반주', 브루클린의 '인사' 등에 납품했고, 일부 주류 전문 판매점에도 유통하고 있다. 23도이지만 부드럽고 풍미가 좋다는 평가다. 가격은 25~28달러 내외. 지난 5월 미 블룸버그에 '전통 방식으로 한국 소주를 만드는 미국인'이란 기사가 나온 뒤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졌다. 모든 걸 혼자 하는 터라 주문이 밀려들면 힘들기도 하지만 품질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소신.

"제가 한국에서 지낸 황홀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기념하기 위해 이 술을 만들었어요. 누굴 가르치려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잘난 척하고 싶은 생각 전혀 없어요. 그저 한국 소주의 아름다움을 미국에 알리는 첫 이방인이자 한국 술로 세상을 개척하고 싶을 뿐이에요.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모두 날려버려요. 술 한 잔과 함께.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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