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무료급식 25년.. 光州 '나눔 대부' 떠나다

광주광역시/김성현 기자 2016. 7. 27.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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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 털어 貧者들 밥먹인 '사랑의 식당' 허상회 원장 마지막 순간 연명 치료 거부 "치료할 돈으로 급식 보태라"

평생을 불우 청소년 보호와 무료 급식 봉사에 헌신한 허상회(81·사진) 광주직업소년원 '사랑의 식당' 원장이 지난 25일 숨졌다. 그는 지난 12일 급식 봉사활동 도중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측은 폐기종 진단을 내리고 인공호흡기에 연명하는 치료를 권유했다. 하지만 허 원장은 "내 치료에 쓸 돈이 있으면 급식 시설 운영비에 보태겠다"며 급식 시설 한쪽에 있는 거처로 돌아왔다고 사랑의 식당 관계자는 전했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부친이 작고한 뒤 가세가 기울자 친척 집에서 지내다 가출해 구두닦이와 신문 배달 등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1958년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선 광주공원 한쪽에 천막을 치고 구두닦이와 신문 배달로 생계를 꾸리던 청소년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했다. 공원 청소, 결식노인 등을 위한 봉사도 시작했다. 1960년엔 광주시가 공원 조경을 위해 천막촌을 철거하려고 하자 시유지 500여평을 빌려 광주직업소년원을 열기도 했다.

고인은 우유 대리점 등을 운영하며 모은 재산을 털어 1991년 10월 광주직업소년원 터에 '사랑의 식당'을 열었다. 광주 최초의 무료 급식 시설이었다.

2007년에는 복지 법인 '분도와 안나 개미 꽃동산'을 설립하고 자신의 아파트 건립 용지를 처분한 6억원과 전남 화순의 땅 6만㎡를 판 돈으로 사랑의 식당 운영 기금을 지원했다. 분도와 안나는 허씨 부부의 천주교 세례명이며, 개미는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뜻한다고 한다. 사랑의 식당에는 요즘도 매일 노숙인 등 450~700명이 찾아 허기를 달랜다.

고인은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에 식당 운영권을 맡겼다고 한다. '살아서 사람의 거름이 되고, 죽어서는 나무의 거름이 되겠다'는 유언대로 그의 유해(遺骸)는 26일 오전 '사랑의 식당' 한쪽의 나무 아래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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