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등재, 총성 없는 외교 전쟁"

허윤희 기자 2016. 7.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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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유산委 보고관 조유진 한국인으로는 처음 맡게 된 직책.. 등재 결정문 검토·승인하는 역할 "문화 가치를 객관적으로 보게 돼.. 올해 회의, 터키 쿠데타로 중단도"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예요. 자국 대표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노력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현장이죠. 10년 동안 한국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했는데 올해는 전체를 조정하는 의장단 입장에서 활동하니 새롭네요. 시야가 확 넓어졌습니다."

지난주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제40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첫 한국인 보고관(라포터·rapporteur)이 탄생했다. 세계유산 전문가이자 문화재청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조유진(35·건국대 세계유산학 박사과정)씨다. 1977년 1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시작된 이래 아시아 보고관은 두 번째. 1994년 18차 위원회에서 활동한 중국인 보고관 이후 처음이다.

"보고관이 뭘 하는 거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많아요. 매년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는 각국이 신청한 유산의 등재 여부를 결정하고, 등재된 세계유산에 대해선 '보존 관리를 위해 이런저런 걸 하라'고 요구하고 권고할 수 있어요. 요구 사항의 내용을 담는 결정문을 검토·수정하고 최종 승인하는 게 보고관의 역할입니다." 조씨는 "일단 사무국에서 결정문 초안을 정리해 공개한 후 회의장에서 토론하며 나오는 의견들을 순간순간 결정문에 넣거나 빼야 한다. 회의장을 비울 수 없어서 화장실을 못 간 게 제일 힘들었다"며 웃었다.

위원회 의장단은 의장 1명, 부의장 5명, 보고관 1명으로 구성된다. 통상 주최국에서 의장을 맡고, 지역(대륙)별 부의장을 뽑으며, 위원국 21개국 중에서 보고관 한 명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조씨는 지난해 제39차 위원회에서 차기 보고관으로 선출됐다. 주(駐)유네스코 인도대사가 강력히 추천했다고 한다. 조씨는 "10년 동안 한국 대표단 활동을 하면서 각 나라 대표단, 사무국 사람들과 꾸준히 네트워크를 쌓은 덕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각국이 원하는 내용이 최종 결정문에 반영되느냐 마느냐를 놓고 치열한 외교 전쟁이 펼쳐집니다. 객관적 입장에서 다른 나라가 어떻게 수정안을 내는지 과정을 세밀히 볼 수 있었어요."

조씨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싱가포르, 영국, 오스트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려대 한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2005년 문화재청 국제교류직 '세계유산' 담당으로 특채됐다. 2014년 퇴직한 후에도 민간 전문가 자격으로 우리 측 대표단에서 활약했다. 문화재청 안팎에선 "그만한 인재가 없다"는 평이다. 올해 유네스코 측에선 "능숙한 처리가 돋보였다. 10년만 더 시키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세계유산 21건이 새로 등재된 이번 회의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15일 밤 터키에서 일어난 군부 쿠데타 여파로 중단됐다가 속개했지만 결국 사흘 일찍 종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책·예산 관련 나머지 의제들은 오는 10월 초 파리 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예비심사에서 '반려(defer)'를 받았다가 극적으로 뒤집혀 등재되는 이변도 속출했다. 그녀는 "점점 외교력이 중요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올해 '한국의 서원'을 등재 신청했다가 '반려' 판정을 받아 자진 철회했었다. 조씨는 "여러 유산을 묶어서 신청할 경우 모두 합해서 어떤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느냐를 부각해야 한다"며 "7개국에 흩어진 '르 코르비지에 건축 작품들'은 올해 등재에 성공했지만 미국이 신청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현대건축 주요 작품'은 투표까지 간 끝에 보류됐다. 한 사람의 영향력을 기리려 해선 안 되고 근대 건축의 흐름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통합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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