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내전 때 콜레라 환자 하루 200명씩 살렸죠"
이일하(69) 굿네이버스 이사장의 ‘봉사 인생’은 1970년대 중반 경기도 성남의 빈민가에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목사 안수를 받아 막 교회를 개척할 참이었다. 후원자를 모아 아이들을 돕고 주민 자립을 위한 신용조합을 만들었다. 이 이사장은 “봉사할 때 이상하리 만치 힘이 샘솟았다. 이것이 천직(天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일의 규모가 커지면서 개인 빚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결국 모든 걸 내려 놓고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려 했다. 그런데 당시 고교생이던 아들이 말했다. “아빠가 계속 남 돕는 일 하고 살면 좋겠어.”그는 91년 굿네이버스(Good Neighbors)를 설립했다. 이후 25년간 국내부터 해외 사업까지 쉼 없이 진행해 왔다. 96년에는 국내 비영리단체(NPO) 최초로 유엔(UN)에서 ‘포괄적 협의 지위’를 받았다. 이를 부여받으면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산하 11개 위원회의 모든 회의에 참여해 의제를 제안할 수 있다.
이 이사장은 지난달 굿네이버스 공채 1기인 양진옥(44) 사무총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줬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굿네이버스 사옥에서 이 이사장을 만났다.
Q : 3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지금 어떤가
A : “직원들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병상에 있는 날 찾아왔다. 내가 말을 못하니 ‘회장님, 이 결정에 찬성하면 웃어주세요’ 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 이렇게 웃으며 얘기할 수 있다.”
Q : 25년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A : “94년 르완다 내전 때 의료단을 구성해 현지 난민촌에 갔다. 정말 끔찍했다. 매일 대형 트럭이 시신 5000여 구를 실어 옮겼다. 오염된 호수물을 마시면 바로 콜레라에 걸렸다. 거기서 콜레라 환자를 하루에 200명씩 살렸다.”
Q : 북한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A : “97년 유엔에 속한 NPO 단체의 장으로서 처음 평양에 갔다. 이후에도 120차례 넘게 평양을 방문했다. 젖소 500마리를 보내고 공장을 지어주기도 했다. 2008년 이후에는 가보지 못했다.”
Q : 가장 힘든 활동이 뭔가.
A : “굿네이버스는 각 지역마다 아동학대 신고센터를 두고 학대 피해 아동이 머무는 그룹홈을 운영 중이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매일 신고 전화를 받느라 직원들이 녹초가 된다. 정부 차원의 아동학대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
Q : NPO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A : “동 단위로 최소한 한 개 이상의 NPO가 주민과 함께 지역사회의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풀뿌리 NPO 운동’이 확산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업 기부금이 민간 단체에 고루 돌아가야 한다.”
Q : 앞으로의 계획은.
A : “굿네이버스는 100만 명 넘는 회원이 모여 이제 국내 토종 NPO 중 유일하게 기부금 기준 10위권 안에 드는 단체가 됐다. 그 과정에서 내 나름의 족적을 남긴 것 같아 뿌듯하다. 당장은 미국 굿네이버스 지부로 가서 글로벌 자금 유치, 대북 지원 등의 소임을 다하려 한다.”
글=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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