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도 모르던 까막눈 어르신들, 시인 됐다

입력 2016. 7. 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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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탓 초등교 못나온 50, 60대 4명.. 여성학교서 글 깨친 뒤 시집도 내가슴에 묻어둔 사연, 눈물로 풀어내
[동아일보]
어머니 시인 이명옥, 윤복녀, 유미숙, 김영숙 씨와 강사 박미산 시인(왼쪽부터)이 시집 ‘시, 잠자는 나를 꺼내다’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어머니 시인 4인방은 지난해부터 한글을 배우고 시를 써 시집을 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6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특별한 출판기념회. 알록달록 고운 원피스와 재킷을 차려입고 시를 낭독하던 ‘노년의 시인들’은 “정규교육 과정을 밟지 못해 한글조차 못 떼던 우리가 어느새 시인이 됐다. 믿기지 않는다”며 연신 눈물을 닦아 냈다. 목소리는 울먹거렸지만 눈물을 훔치는 손가락 사이에서는 누구보다 환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시, 잠자는 나를 꺼내다’란 시집의 저자는 어머니 시인 윤복녀(68), 이명옥(64), 김영숙(63), 유미숙 씨(55) 4인방.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한글을 배우지 못하고 살아온 ‘무학(無學)’의 작가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5월 27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들주민회 부설 마들여성학교 ‘시 쓰기를 통한 치유 인문학’에서 처음 글을 배웠고 시를 써 시집까지 내게 됐다.

네 명 모두 초등학교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특히 이 씨는 어릴 적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 이 씨는 군 복무 중 북한에서 남파한 무장공비 김신조가 쏜 총에 다리 하나를 잃은 오빠의 이야기를 시로 담았다. ‘30년 살며 3남매 남겨 놓고 하늘나라로 가신 우리 오빠’라는 시의 마지막 문구를 쓰면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기가 어려워 펑펑 울었다고 했다.

유 씨도 고단했던 어린 시절을 ‘담벼락 높은 그 집’이라는 시 안에 담아 냈다. 유 씨는 “어려워진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님이 언니를 잠깐 동안 부잣집에 보내야 했다. 언니가 보고 싶었던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부잣집 주위를 배회할 때의 기억을 회고해 시를 썼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물난리로 전 재산을 잃었다. 이 일로 아버지는 방황했고 김 씨가 동생을 돌보고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학교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공부에 미련은 계속 남았다. 김 씨는 “아이를 업고 학교에 가는 꿈을 많이 꿨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도 하고 책도 내게 되니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이들을 가르친 박미산 시인(55)은 “네 명의 제자를 통해 오히려 내가 큰 감동을 받았다. 이분들과 함께 에세이집을 낼 수 있도록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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