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집 부부의 '착한 여행'

윤형준 기자 2016. 6. 2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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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학당 돕는 이한신·심재숙씨 여행기 수익금 기부, 취업 알선 "국물 한 방울 더 주듯 작은 나눔.. 가진 것 없지만 부족한 것도 없죠"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에 있는 한 순댓국집. 테이블 10여 개가 놓인 작은 식당 벽 곳곳에 낯선 이방인을 찍은 사진과 중앙아시아를 다룬 각종 책이 걸려 있었다. 책 아래엔 '이곳에서 판매되는 책 수익금은 전액 고려인과 중앙아시아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 지원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책들을 쓴 사람은 이 국밥집 주인 이한신(53)씨다. 앞치마를 두르고 순댓국을 나르는 이씨는 청년 시절 '중앙아시아 전문' 여행가였다. 패션 디자이너였던 이씨는 1998년 '카자흐스탄 군(軍) 제복 디자인을 도와달라'는 지인의 요청에 처음으로 이 지역을 찾았다가 중앙아시아 광활한 초원지대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후 일도 그만두고 10년 동안 매년 6개월가량을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과 타지키스탄 등 구(舊) 소련 지역 15개 국가를 여행하는 데 썼다. 교육방송에서 구 소련 지역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 전문가 자격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누구도 찾지 않는 오지(奧地)를 돌아다니던 그가 국밥 국자를 들게 된 건 결혼 이후였다. 아현시장에서 10년째 순댓국집을 운영하던 심재숙(57)씨가 2007년 단골손님이던 이씨에게 청혼한 것이다. 결혼 뒤엔 아내 심씨가 오지 여행의 매력에 빠졌다. 심씨는 원래 명절날도 가게를 열 정도로 '일 중독'이었지만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를 나도 알아야겠다"며 여행에 따라나섰다.

부부는 서로를 닮아갔다. 아내는 남편의 '삶의 여유'에 전염됐다. 부부는 2011년부터 매년 한 달씩 가게 문을 닫고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있다. 첫해엔 함께 실크로드 배낭여행을 떠났고 2012년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탔다. 작년엔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로로 알려진 러시아 '콜리마 하이웨이'를 다녀왔다. 이씨는 "더 늙으면 절대 못 갈 곳들을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의 '넉넉한 국밥집 아줌마 인심'을 배웠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이씨는 현지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매년 30~40명의 중앙아시아 사람이 이씨를 통해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그동안 여행 경험을 모아 책 5권을 내고, 수익금으로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한글학교인 '세종학당' 학생들에게 매년 50만~100만원씩 장학금을 주고 있다. 이씨는 "손님들에게 국물 한 방울이라도 더 담아주려는 아내를 보고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정성이나마 베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부부는 다음 달 15일부터 구소련 국가였던 동유럽 몰도바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가는 길에 우즈베키스탄에 들러 세종학당 학생들도 만난다. 부부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 고원 사람들은 '당신들은 우리보다 가진 게 많지만, 우리는 당신들보다 부족한 게 없어 행복합니다'라고 말한다"며 "힘이 닿을 때까진 가진 걸 비우는 '착한 여행'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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