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 안 부리고 솔직해지면 사이다처럼 뻥 뚫립니다"

2016. 6. 2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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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유쾌한 인생탐구' 발간.. 홍창진 경기 광명성당 주임신부
[동아일보]
흰 로만 칼라 옷을 입은 홍창진 신부. 평소 공적인 자리 외에는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이 일상인 그는 “그냥 아저씨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근엄의 가면을 던져버리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자 인생이 유쾌해집디다.”

2004년 기자는 ‘신부님, 진짜 신부님 맞으세요’라고 시작되는 기사에서 그를 ‘날라리 신부’라고 표현했다. 경기 광명성당의 주임신부인 홍창진 신부(56) 얘기다. 기자는 화려한 입담과 마당발 인맥을 가진 그의 성격이 원래 유쾌한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최근 전화를 걸어 책을 냈다며 “서 기자, 크게 써줄 거죠. 날라리 신부로 만든 책임을 져야지∼”라며 크게 웃었다. 그가 펴낸 ‘홍창진 신부의 유쾌한 인생 탐구’는 그의 인생 경험을 담은 글과 신부로서의 상담 사례를 묶었다. 여기서 그는 사제품을 받은 뒤 몇 년간 근엄했던 신부가 어떻게 ‘날라리’ 신부로 불릴 정도로 변했는지 담백하게 써내려갔다. 기자는 그의 유쾌한 성격에 후천적 요소가 적지 않았음을 이번에야 알게 됐다. 장맛비가 내리던 22일 오후 3시 그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아픈데 안 아픈 척, 모르는데 아는 척, 싫은데 좋은 척 허세 부리지 말고 솔직한 나로 돌려놓으면 사이다처럼 뻥 뚫려요. ‘내 깜냥으로 할 수 없는 일은 내버려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하면 용기가 샘솟고 두렵던 마음이 사라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일이 쉬울까. 혹시 신부니까 가능한 건 아닐까.

“신부니까 더 어려울 수도 있어요. 일단 해보면 알아요. 이웃은 솔직한 나를 사랑합니다. 괴짜 신부가 주는 세상살이 훈수인데 해보고 아니면 말고요. 손해 볼 거 없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단순한 질문에 그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큰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문화를 통한 도시 재생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300여 명의 문화예술인과 함께 낙후 지역을 문화가 숨쉬는 곳으로 바꿔보겠다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앞으론 종교의 기능 중 상당 부분을 문화가 수행할 겁니다. 그만큼 문화가 사람 마음을 씻어주고 토닥거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종교가 문화 코드로 사람에게 접근하지 않으면 계속 쇠퇴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자체, 정부나 할 만한 일을 한다는 건가.

“내 깜냥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밤 9시 반에 그 일대 허름한 집을 하나 사서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를 만들 계획에 대해 얘기 나눠야 해요. 그래서 요즘 매일 밤이 술자린데 제가 늘 그래요. ‘술 마시다 죽으면 순교하는 거’라고. 우하하.”

그럼 인터뷰 끝나고 9시 반까지 시간이 붕 뜬다고 하자 웬걸, 오후 6시까지 서울대병원의 서울해바라기센터에 가야 한다고 했다. 센터 자문위원이어서 저녁 모임이 있다는 것.

거기가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다가 타박만 받았다.

“기자가 그것도 몰라. 이번에 섬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 드러나게 된 데 전남 해바라기센터가 큰 역할을 했잖아. 성폭력 성추행 관련 상담하는 곳이야.”

날라리 같았다가도 금세 진지해지는, 알다가도 모를 신부였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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