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에 뼈 묻은 아버지.. 이제야 '영원한 독도인' 됐네요"

박천학 기자 2016. 6. 1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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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경북 울릉군 독도 서도 옛 문어건조장에 세워진 최종덕 기념석 뒤에 그의 셋째 딸이자 독도 최종덕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인 은채(오른쪽 두 번째) 씨와 가족이 앉아 있다. 최은채 씨 제공

‘독도 1호 주민’ 故 최종덕 씨 기념석 세운 딸 은채 씨

“독도에 뼈를 묻은 아버지가 이제야 영원한 독도인(人)으로 남게 됐습니다. 기념석 설치로 독도 영유권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독도 최초 거주자의 딸이 아버지를 기리는 기념석을 독도에 설치했다. 독도 최종덕기념사업회는 13일 오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20번지 서도 옛 문어건조장에 고(故) 최종덕 씨 기념석을 세웠다. 기념석 설치는 작고한 최 씨의 셋째 딸이자 사업회 사무국장인 최은채(옛이름 최경숙·54) 씨가 주도했다. 그는 이날 오전 여객선을 이용해 사업회 회원,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 등 220여 명과 함께 독도를 찾았다.

아버지 최 씨는 1963년 처음 입도한 뒤 서도 어민숙소 자리에 토담집을 짓고 24년간 상주하면서 어로 활동을 했다. 1981년에는 주민등록을 옮겨 법적으로 독도 최초 거주자가 됐다. 이후 서도 ‘물골샘’ 방파제와 동도 정상 헬기장 공사 등에 참여하는 등 독도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으나 1987년 9월 뇌출혈로 숨졌다.

기념석은 가로 60㎝, 세로 50㎝, 높이 18㎝ 크기의 오석 재질이며, 앞면에는 ‘영원한 독도 주민 최종덕, 독도 거주: 1963∼1987년’이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최 씨는 “아버지가 독도에 오랜 기간 살았지만 흔적이 없어 안타까웠다”며 “기념석 설치로 아버지의 독도 사랑은 물론,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한 사실도 널리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최 씨는 지난 2010년 사업회를 국토해양부(현 해양수산부) 산하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고 독도에 대한 애국심을 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최 씨는 “매년 학생들을 상대로 독도 주민생활에 따른 실효적 지배권에 대해 강의하고 독도 사진 전시회, 독도 탐방 등으로 우리 땅 독도를 널리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은 지난 1월 사업회가 신청한 최 씨 아버지 기념석 설치를 위한 국유재산 사용(면적 1㎡)을 허가했다. 민간단체가 천연보호구역인 독도 땅을 임차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기간은 오는 2019년 1월 28일까지다. 포항해양청은 사용료를 공시지가 등을 고려해 연간 90원으로 산정했다. 최 씨는 “포항해양청이 민간인으로서 독도지킴이로 활동한 아버지의 뜻을 기려 상징적으로 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씨는 8년 전부터 부친의 기념석 설치를 추진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자연환경 훼손 우려로 불허하다 지난해 12월 허가했다. 지난 2010년에는 사업회가 같은 자리에 비석을 세웠으나 미승인 시설물이라는 이유로 이듬해 6월 울릉군이 철거하기도 했다. 독도에는 영토 표지석 4개, 위령비·암각서 10여 개 등이 있으며 모두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설치했다.

울릉 =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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