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청 캐비닛에 묻힐 뻔한 '보물' 찾아낸 공무원

최종권 2016. 6. 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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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고인쇄박물관 이규상 과장87년 주민이 군청으로 가져온 고서한자해석 통해『조선왕조의궤』확인90년 문화재 이어 최근 보물로 지정
이규상씨가 8일 청주시 낭성면 무성리에 있는 조선 21대 왕인 영조의 태실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하마터면 군청 캐비닛에 묻힐 뻔했지요. 30년 가까이 자식처럼 아낀 고서(古書)가 보물로 지정됐다니 참 뿌듯합니다.”

충북 청주시 고인쇄박물관의 이규상(56) 운영사업과장은 1987년 청원군(현 청주시 편입)에서 발견된 조선왕조 의궤가 보물로 지정됐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했다. 앞서 지난 3일 문화재청은 『영조대왕 태실 석난간조배 의궤(英祖大王 胎室 石欄干造排 儀軌)』를 보물 제1901-11호로 지정했다. 이 의궤는 조선 21대 왕인 영조(1694~1776)의 태실을 만든 경위와 조성방법 등이 기록된 책이다. 태실은 왕실 자손의 태(胎)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석조물로 영조의 태실은 청주시 낭성면 무성리에 보존돼 있다.

청원군 부용면(현 세종시 부강면) 출신인 이씨는 1985년 청원군청 공무원으로 임용됐고 87년 군청 문화재 업무를 맡으면서 이 의궤를 처음 봤다. “태실 봉지기 후손이 살고 있는 무성리 마을의 이장님이 다락방에 보관하던 책을 갖고 오셨어요. 표지가 천으로 돼 있고 행차 그림과 정교한 글씨체에서 귀한 책이란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군청에선 누구도 책자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씨는 20쪽 분량의 한자 해석을 위해 향토학자를 찾아갔다. 그는 사비를 들여 밥과 술을 사며 향토학자를 설득해 해석작업을 진행했다. 1년여 뒤 200장 넘는 해설본을 받아든 이씨는 태실의 조성과정 등을 담은 의궤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태실 위치를 어떻게 정할 것이며 지방별로 동원된 역군(役軍)과 장인(匠人)의 인원수가 날짜별로 기록 돼 있었어요. ”

이씨는 현장 답사와 관련자료 수집을 거쳐 이듬해 충북도에 문화재 지정을 신청했다. 충북도는 90년 12월 이 의궤를 충북 유형문화재 170호로 지정했다. 하지만 당시 청원군엔 박물관이나 수장고가 없어 의궤를 군청 문화공보실의 캐비닛에 보관해야만 했다. 이씨는 “의궤가 훼손되지 않게 항습 처리 등을 정기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후 의궤는 문의문화재단지를 거쳐 2014년 청주고인쇄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졌다.

이 의궤는 2007년 조선왕조의궤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보물 등재의 계기를 맞았다. 관련 전문가들이 2011~2013년 국내에서 보관 중인 의궤를 전면 재조사했고 그 결과 다른 조선왕조의궤와 함께 『영조대왕 태실 석난간조배 의궤』도 보물로 등재됐다. 이씨는 “보물 지정까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의궤를 통해 문화재 연구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사진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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