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주스님 "신분굴레 속 아이들, 배움 통해 큰 인재로 컸으면"

백성호 2016. 5. 31.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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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공생회 이사장 월주 스님이 네팔 룸비니 스리마하락시미 초등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월주 스님은 “동네 주민들이 학교 부지를 마련하면 우리가 지원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원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힘으로 얼마를 하면 나머지를 우리가 도와야 한다. 그래야 현지인들에게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룸비니(네팔)=백성호 기자]
후원자 요청으로 스리나와두르가 분황초등학교에 새로 지은 도서관. [룸비니(네팔)=백성호 기자]

| 불가촉천민 마을에 학교 세워
카스트제도 폐지됐지만 관습 남아
천민이 학교 가면 학생들 수업 거부
익명 후원자 2명 ‘비상금’선뜻 내놔

교실은 달랑 한 칸이었다. 꾸깃꾸깃 넣으면 두 학급이 들어갔다. 나머지 한 학급은 움막에서, 또 두 학급은 먼지가 풀풀 나는 땅바닥에서 수업을 했다. 노트에 뭘 적으려면 학생들은 아예 땅에 엎드려야 했다. 6월부터 시작되는 우기에는 그마저도 어려웠다. 그래도 학교는 마을의 희망이다. 룸비니의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23일 네팔 룸비니의 시골마을에서 스리나와두르가 분황초등학교의 준공식이 열렸다. 국제개발협력NGO 지구촌공생회(이사장 월주 스님)가 학교를 찾았다. 룸비니는 붓다의 탄생지다. 2600년 전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모니 붓다가 태어났다. 룸비니는 인도와 네팔의 국경 근처다. 현재는 네팔 영토다. 붓다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주창했지만, 룸비니에는 지금도 불가촉천민이 사는 지역이 있었다.

마을은 초라했다. 흙담에 초가 지붕을 얹은 움막이 대다수였다. 집 안과 집 밖의 구분도 애매했다. 학생들과 주민들은 동네 어귀까지 나와 월주 스님과 후원자 2명 등 지구촌공생회를 반겼다. 아이들의 웃음과 학부모들의 눈에는 ‘고마움’이 흘렀다. 부모들은 대부분 문맹이었다.

준공식에서 동네 주민들 앞에 선 월주 스님은 “신분의 굴레로 어려움을 겪는 이곳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건립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지혜를 본받아 혼란스러운 나라를 바로 세우는 동량들이 많이 나오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새로 지은 학교는 마을에서 가장 세련된 건물이었다. 교실 천장에는 팬(선풍기)이 달려 있고, 책상과 칠판도 번듯했다. 도서관에는 영어와 네팔어로 된 책들도 꽂혀 있었다.

| “책도 많고 칠판 생겨서 좋아요”
200명 아이들 새 교실서 활짝 웃어
공생회, 오지 학교 8곳 더 세우기로

준공식이 끝나자 학생들과 주민들은 교실로 우르르 달려갔다. 안을 둘러본 그들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4학년 마니사 하리잔(9)은 “전에는 교실에 칠판이 없었다. 시멘트 위에다 분필로 쓰고 지웠다. 이제 칠판이 생겨서 좋다”고 말했다. 동급생 폭스파 야돕(10)은 “땅바닥에서 수업할 때는 그늘이 없었다. 뜨거운 햇볕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룸비니는 5월인데도 체감 온도가 40도가 넘는다. 여름에는 50도를 훌쩍 넘어선다.

네팔에는 인도처럼 오랜 세월 내려오는 카스트 제도가 있다. 헌법에서는 1978년에 폐지됐다. 관습은 아직도 남아 있다. 지구촌공생회 네팔지부 운영위원장 다와라마(40)는 “헌법에는 불가촉천민이 공무원 시험을 보면 가산점을 주게끔 돼있다. 실제로는 교육의 기회가 희박해 공무원이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가령 불가촉천민이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도 쉽지 않다. 그 학생이 수업에 들어가면 나머지 학생들이 모두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대학을 포기해야 한다. 이건 실제 있었던 일이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자기 아들이 학교에서 불가촉천민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오면 밥을 주지 않는다. 경찰서에서도, 심지어 땅을 살 때도 ‘출신 계급’을 기록해야 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으레 ‘고향이 어디냐’‘아버지가 누구냐’‘계급이 뭐냐’는 세 가지를 묻는다. 다와라마는 “그럼에도 이런 차별을 깨트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교육이다”라고 말했다.

이 마을 주민은 2000명, 학생 수는 200명이다. 부산에서 온 후원자 2명은 학교 건립기금 2억2000만원을 선뜻 내놓으며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흔적을 남기지 않고 베풀다)’를 했다. 해발 3000m가 넘는 신두팔촉 산악지대의 불가촉천민 마을에도 학교 건립을 후원했다. 수십 년간 생활비를 아끼며 한두 푼씩 모은 ‘평생 비상금’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후원자들은 “학교 명칭에 우리 이름을 넣는 대신 ‘분황(芬皇)’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불교는 인도에서 신라로 곧장 전해졌다고 한다. 경주에 있던 신라 왕실의 원찰명도 분황사였다. ‘분황’은 산스크리트어 ‘푼다리카(Pundarika)’에서 왔다. ‘최초의 연꽃’이란 뜻이다. 후원자들은 “부처님께서는 불가촉천민도 다른 계급 사람들과 동등하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진흙 속의 연꽃처럼 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구촌공생회는 수도 카트만두에서 100㎞ 떨어진 산간 오지 신두팔촉 지역에도 연말까지 학교 8개를 세운다. 지난해 지진으로 인해 5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지역이다. 6166개 교실의 89%가 붕괴됐다. 지구촌공생회는 해발 3000m가 넘는 산 위에 학교를 짓는다. 그럼 산악지대 학생들이 1~2시간씩 산을 타고 와서 학교를 다닌다. 지구촌공생회 02-3409-0303.

룸비니(네팔)=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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