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공무원 총각·버스회사 회장이 도와줘 운전대 잡아"
지난 25일 오후 1시 서울 양천공영차고지. 이곳을 기점으로 여의도로 향하는 6623번 시내버스에 유금단(46)씨가 올라 시동을 걸었다. 승객들 보기 좋으라며 운전석 창가에는 토끼풀 한 묶음을 꽂아놓았다. 2002년 6월 두만강을 넘어 탈북한 유씨는 올해로 버스 운전을 한 지 10년이 된다. 그는 "남한 사람들을 버스에 태워 나르다 보면 나도 남한 사람들의 삶에 일부가 된 것 같다"며 "몸은 힘들어도 나와서 승객들을 만나는 삶이 좋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산골 마을에서 6·25전쟁 납북자 가정의 막내딸로 태어난 유씨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농사일밖에 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처음 한국에 혼자 넘어온 뒤 몇 년간은 대부분의 탈북민들처럼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 식당 서빙, 수퍼마켓 점원 등 몸을 쓰는 일을 가리지 않고 했다. 차를 몰며 땅콩 장사도 해봤다.
그러던 중 유씨는 북에 있던 아들을 남쪽으로 데려온 2005년 무렵부터 "한국 사회에서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할 아들에게 버팀목이 되기 위해 좀 더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겠다"는 고민을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유씨의 아들은 12세였다. 유씨는 적지 않은 나이에 공부를 해 대학에 가거나 생소한 컴퓨터 자격증을 따는 것으로는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운전에 자신이 있던 유씨는 버스 회사에 취직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하루 벌이로 살던 유씨에게 버스 운전에 필요한 대형면허를 따기 위해 드는 학원비가 문제였다. 이때 그에게 힘이 돼준 사람이 유씨가 '잘생긴 총각'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한 직원이었다. 유씨는 2006년 고용노동부를 찾아가 정부에서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만든 학원비 지원 프로그램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미 지원 대상자가 정해져 더 이상 지원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유씨는 담당자였던 '총각'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꼭 성공할 테니 지원을 해달라"고 했다. '총각'은 유씨가 다시 찾아오자 "그럼 지원을 받도록 해 드릴 테니 꼭 원하는 바를 이루시라"고 격려했다. 유씨는 "그때 그 총각 아니었으면 지금 운전대를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버스 운전 자격은 갖췄지만 버스 회사 취직은 훨씬 더 어려웠다. 유씨는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지원했으나 번번이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떨어졌다. 그러던 중 회사에 여러 번 찾아온 유씨를 본 한 운수회사 이사장이 경기도의 마을버스 회사를 소개해줘 1년간 시흥에서 마을버스를 운행할 수 있었다.
2008년 유씨는 마을버스 경력을 가지고 서울 시내버스 회사에 재도전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취직이 쉽지 않았다. 유씨는 "탈북자에 여성이라 편견이 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유씨의 사정을 전해 들은 실향민 출신의 풍양운수 회장은 "그동안 한국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것 같다. 용기가 대단하다"며 그를 채용했다. 그 뒤 풍양운수가 오케이버스로 합쳐지면서 유씨는 지금까지 이 회사에서 계속 버스 운전대를 잡고 있다. 유씨에게 남쪽 삶의 희망이었던 아들은 현재 서울의 모 대학 행정학과에 다니면서 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유씨는 "고용노동부 직원부터 실향민 회장까지, 이런 분들의 도움 덕에 이렇게 번듯하게 사회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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