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3명 실종자 찾아낸 '빵점 아빠'..25일 실종아동의 날

홍장원 2016. 5. 25. 17:4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5년간 잃어버린 아이찾기 매진한 나주봉 회장보험설계사로 인생2막 개척..챙겨주지못한 가족에게 미안실종아동法 나이제한 없애야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회장은 남의 자식 찾다가 자기 자식 내팽개친 사람이다. 1991년 개구리소년 실종 사태를 기점으로 실종자 찾기에 주력한 그는 20년 넘는 세월 동안 가정 일은 아예 버려두고 살았다. 1000원짜리 지폐 한 장 집에 가져다준 기억이 없다. 서울 청량리에서 가로판매대를 하는 아내가 힘겹게 생계를 꾸렸다.

나 회장은 "두 아들에게 고기를 먹여주지는 못할망정 고기 잡는 법은 알려줘야 하는데 학원 하나 제대로 보낸 게 없다"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해 고맙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25일 '실종아동의 날'을 맞아 나 회장을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돈 한 푼 못 버는 빵점짜리 가장이지만 그 대가로 25년간 이룬 업적은 100점을 줘도 모자라다.

무려 653명의 실종자를 찾아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실종된 아이가 끝내 시체로 돌아온 안타까운 사연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이가 없어진 지 한참 후에 다니던 유치원 정화조 청소를 했는데 호스에 뭐가 걸려서 봤더니 아이 두개골이 나온 거지요. 유력한 용의자가 있었는데 남편을 칼로 찌르고 교도소에 수감된 옆집 여자였어요. 끝내 혐의를 부인해 미제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그는 강원도 홍천에서 삼형제의 맏이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학업을 중단한 채 남의 집 머슴으로 들어갔다. 식당 주방장, 돼지 밀도살자를 거쳐 각설이로 전국을 떠돌던 1991년 7월 어느 날, 자식을 잃고 울부짖던 개구리소년 부모를 대구에서 만났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뿌려 달라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부모들과 함께 방방곡곡을 다니게 됐고 이후로는 이게 제 본업이 됐지요."

청량리 컨테이너 박스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실종자 찾기에 매진하기로 했다. '사람을 좀 찾아 달라는' 부탁이 전국에서 쇄도했다. 박근혜 이재오 이회창 정동영을 비롯한 정치권 거물이 사무실을 속속 찾았다. 2005년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세상에 나온 배경이다. "그 전까지는 정부에 제대로 된 실종자 통계도 없는 상황이었죠. 법률을 만든 덕분에 실종 아동이 나오면 국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그는 2014년 말부터 명함에 새로운 직업을 추가했다. 삼성화재 보험설계사로서 새로운 인생길 개척에 나선 것이다. 생계에 허덕이며 실종자 찾기 일을 그만둘 의향을 비치자 지인 중 한 명이 "그간 쌓은 인맥을 토대로 보험 일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한 것이다.

"신세 진 게 많다며 고마워하는 사람은 많았는데 막상 보험 하나 들어 달라고 부탁하자니 어려운 게 많네요. 보험에 대한 인식이 좋다고는 볼 수 없지만, 살면서 보험은 꼭 필요한 거잖아요. 이걸로 주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겠다 싶어 겸사겸사 시작했어요." 나 회장은 "첫 달 월급으로 185만원을 받고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한참을 울었다"며 "25년 만에 받은 첫 월급이라 감회가 남달랐다"고 말했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사건을 소급해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을 위한 추모공원도 만들고 싶고, 실종 아동 관련 법 나이 제한을 없애 성인이 실종되더라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찾아 나설 수 있게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기금만 좀 더 있으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까워요."

[홍장원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