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학도병, 7選의원, '샘터' 창간.. 몸으로 쓴 현대史

선우정 논설위원 입력 2016. 5. 18. 03:11 수정 2016. 5. 1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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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순 前 국회의장] 평양 출신, 6·25 학도병 참전.. 주요한 선생 아래서 정치 시작 '못살겠다, 갈아보자' '토사구팽'.. 지금도 회자되는 그의 정치 名言

김재순(金在淳·90) 전 국회의장이 17일 경기도 하남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유소년 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열세 살 때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훗날 일제의 신사참배에 항거하다가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세례를 받았다. 당시 그는 같은 교회 장로 조만식 선생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해방 직후 젊은 혈기에 일제가 세운 평양신사(神社)를 친구와 함께 불태운 뒤였다. 조만식 선생은 "네가 할 일은 신사를 태우는 게 아니라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라고 했다. 평양 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그가 월남해 서울 상대에 진학한 것은 이 충고 때문이었다. 그는 해방 공간에서 흥사단에 참여해 반탁 학생운동을 했고 학도의용대로 6·25 전쟁을 겪었다.

고인은 스승 주요한 선생의 선거 사무장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1950년대 유명한 야당 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가 민주당 선전차장이던 그의 손을 거쳤다. 4·19로 정권이 교체된 직후 강원도 양구에서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5대)됐다. 5·16 이후 공화당에 참여해 철원·양구·화천 지역에서 내리 4선에 성공했다. 고인은 생전 자신의 가장 큰 업적으로 철원평야의 물 부족을 해결한 토교 저수지 건설을 꼽았다. 지금은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간청해 건설비를 끌어냈다"고 회고했다. 철원 주민들은 최근 저수지 제방에 그의 송덕비를 세웠다. 비문의 한 구절이다. '물길은 철원평야에 실핏줄처럼 스며들었고, 철원 주민은 기쁨에 겨워 어깨춤을 추었다.'

유신·전두환 정권 때 물러나 있던 그가 현역에 복귀한 것은 노태우 정부 때였다. 여소야대 상황이던 13대 때 국회의장에 올라 "의석 분포가 두려움을 느낄 만큼 신비스럽다"며 '정치의 황금분할'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선거 결과가) 화합하라는 지상 명령을 의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장 재임 시 건강보험 확대, 청문회 제도 도입 등 많은 성과를 이끌었다. 법안 처리율은 81.8%에 달했다.

시련도 컸다. '김영삼(YS)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그는 YS 집권 직후 재산 신고 논란에 휘말려 정계를 떠났다. 당시 그가 인용한 '토사구팽(兔死狗烹·토끼 사냥이 끝나자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고사성어는 비정하고 부당한 정치의 핵심을 찌르는 풍자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YS를 용서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순간이 아까운 인생인데 응어리를 지니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인생을 지배당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말을 남겼다.

고인은 생전 "눈 뜨고 보는 현실도 있지만 눈 감고 생각하는 현실도 있다"고 했다. 그의 좌우명은 안창호 선생에게 배운 '무실역행(務實力行·참되고 실속 있도록 힘써 실행함)'이었다. 고인은 이런 자세로 '눈 감고 생각하는' 문화의 세계에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70년 창간한 교양지 '샘터'는 지금도 건재하다. 창간 직전 한 언론 경영인이 그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고 한다. "잡지는 전부 벗겨야 합니다. 요새 벗지 않으면 안 봅니다." 그는 답했다. "벗기는 건 그쪽이 하시고 나는 입히렵니다." "지식을 입히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피천득 선생,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최인호·정채봉 작가, 장영희 교수가 샘터란 작은 공간에서 우리 사회의 교양 기반을 크게 넓혔다.

얼마 전 그는 피천득 시집을 읽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5월이 되면 피 선생이 떠올라서요. 5월에 태어나 5월에 떠나셨거든요. 선생의 '오월'이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장례는 국회장으로 열린다. 유족은 부인 이용자씨와 아들 성진(샘터 이사장), 성린(재미 사업), 성봉(도서출판 여백 대표), 성구(샘터 사장)씨 등 4남.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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