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저녁마다 '야학 교사' 변신하는 65살 환경미화원
만학도에서 스승 된 배연자씨…"냇물이 바다될 때까지 공부해야죠"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올해 예순다섯 살 환경미화원 배연자씨에게 월요일은 한 주에서 가장 바쁜 날이다.
새벽 3시 이른 시간에 거리로 나가 오후까지 쓰레기를 치운다. 집으로 돌아와 한숨 돌리고 저녁이 되면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환경미화원에서 선생님으로 변신하는 시간이다.
배씨는 중랑구 묵동의 40년 전통 '태청야학' 교사다. 초등학교 2∼3학년 국어 과정을 맡은 그는 월요일 저녁 1시간30분 동안 나이가 지긋한 늦깎이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그녀는 5년 전만 해도 지금 학생들처럼 책상에 앉아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아파 요양을 위해 강원도 산골로 이사하는 바람에 중등 교육과정을 밟을 기회를 놓쳤다.
배씨는 "스물세 살에 결혼하면서 서울로 올라와 묵동에 살게 됐는데, 마침 집 근처에 야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언젠가 꼭 그곳에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생업에 육아까지 바쁜 탓에 야학 주변을 맴돌기만 했던 배씨는 아들 둘을 다 키우고 쉰다섯 살이던 2006년 꿈에 그리던 중학생이 됐다.
배움의 길을 걷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배씨는 "당시 결혼 음식을 만드는 업체에서 일했는데, 새벽까지 꼬박 일한 탓에 시험 시간에 조느라 낙제한 적도 있다"며 웃었다.
열정이 넘쳤지만 공부에 투자할 시간은 부족했던 배씨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엉엉 울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선생님들이 저 달래느라 고생 좀 했을 걸요"라며 쑥스러워했다.
공부는 쉽게 풀리지 않았지만, 배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6년 만에 중·고교 과정을 마쳤다. 배씨는 "더뎌도 반복해서 공부하니 머리에 들어오더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시절 교사가 되고 싶은 꿈을 간직한 배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태청야학 교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가족들도 '전문성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을 어떻게 가르치느냐'며 웃더라고요. 그래도 한글은 자신 있었어요. 한글 모르는 늦깎이 학생에게 내가 배운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강의 시간은 7시30분부터였지만, 조금이라도 많이 배우고 싶었던 학생 시절이 기억 나 30분 일찍 수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배씨의 체력을 염려한 젊은 교사들과 학생들의 만류로 지금은 정시에 수업을 시작한다.
요새도 낮에 일하느라 수업 시간에 졸음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꾸벅거리는 학생을 보면 예전 생각이 많이 난다. 그럴 때면 학생들을 깨워 동요 '시냇물'을 같이 부른다. 냇물이 흘러 강물이 되고, 강물은 넓은 세상이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는 노래다.
15일 선생님으로서 다섯 번째 스승의 날을 맞은 배씨는 시냇물이 바다가 되듯, 배우면 배울수록 스스로 커지고 성장하는 즐거움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 보면 아직 이루지 못했더라도 지금 당장 행복하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배워야죠."
a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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