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모아 16년째 매달 장학금.. 82세 큰 스승

대전/김석모 기자 2016. 5. 14.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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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스승의 날.. 45년 교직생활 마치고 학생들 돕는 박세춘씨] 매달 받는 돈의 10%씩 200명에게 1억원 넘게 전달.. 팔순 잔치도 건너뛰며 베풀어 "어릴적 선생님의 도움으로 성냥 공장서 일하며 학업 끝내.. 그때 받은 은혜 돌려주는거죠"

13일 대전시 서구 신계중학교에선 작은 장학금 전달식이 열렸다. 교육자 출신인 박세춘(82)씨는 이 학교 2학년인 서연희(13)군에게 35만원을 주며 "적은 돈이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달라"고 당부했다. 서군은 "약사가 돼서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고 답했다.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이날 박씨는 200번째 장학금 전달식을 했다. 45년5개월 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그는 2005년 1월부터 매달 자신의 연금 10%를 지역 학생 1명에게 주고 있다. 그동안 총 140명에게 '작은 장학금'을 안겼다. 또 지난 15년간 매년 4명씩 60명에게 좀 더 큰 액수의 장학금을 줬다.

1999년 조치원 교동초등학교(현 세종시)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그는 2001년부터 '베푸는 삶'을 시작했다. 교원공제회 예금 중 1500만원을 떼어 장학기금을 만들고, 자신이 예전에 4년간 교육장으로 일했던 충남 금산교육지원청을 통해 1년에 4명씩 '금산장학금'을 지원했다. 1인당 20만~30만원에서 시작했던 장학금 액수는 현재 100만원이 됐다. 박씨는 연금 등을 아껴 모은 돈을 장학기금에 꾸준히 넣어 9000만원으로 불렸다. 희수(喜壽·77세) 때 2000만원을 부었고, 팔순(八旬·80세)을 맞았을 때도 생일잔치를 마다하고 다시 2000만원을 내놓았다. 그가 2001년부터 올해까지 16년간 장학금 지급과 기금 적립에 쓴 돈은 1억6000여만원이다.

충북 영동에서 1934년에 태어난 박씨는 네 살 때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조선상업은행 황해도 재령지점으로 발령 나면서 어머니와 함께 떠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6·25전쟁이 나면서 생활비를 부쳐주던 부모와 연락이 끊겼고, 가정형편은 기울어졌다. 국민학교 졸업 후엔 중학교에 들어갈 형편도 되지 않았다. 1년을 쉬고 어렵사리 영동농업중학교에 들어간 박씨는 담임교사의 도움으로 성냥 공장에 취직해 돈을 벌며 공부를 계속했다. 고등학교 과정인 대전사범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성냥을 팔아 학비를 대야 했다. 돈벌이 때문에 1주일간 결석한 적도 있었다. 박씨는 "당시 담임선생님이 호되게 혼내셨는데, 나중에 내 사정을 알고선 가정교사 자리를 알아봐 줘 학비와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어려운 유년 시절 학업을 마칠 수 있게 해준 스승들 덕분에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면서 "내가 받은 스승의 은혜를 학생들에게 되갚고 있다"고 말했다.

'은혜를 베풀되 보상을 바라지 말라'는 신조를 가진 박씨는 "매달 학교에서 추천한 학생을 만나 장학금을 주면 그다음 달까지 즐겁다"면서 "삶이 끝나는 날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여태껏 자신이 장학금 혜택을 준 학생 200명의 인적 사항을 관리하고 있다. 파일 한쪽엔 '착하고 슬기로운 꿈나무 기르기'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처음 교편을 잡았던 1954년부터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슴에 품고 실천하는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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