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의 거목' 강영훈 前 국무총리 별세.. 5·16 동참 거부, 남북 화해 기류 '선봉'

강준구 기자 2016. 5. 1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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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총리 등 정·관계 요직 두루 거쳐 김일성과 면담·대북사업 주도

한국 현대사의 거목(巨木)인 강영훈(사진) 전 국무총리가 10일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지병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던 강 전 총리가 이날 오후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정원식 전 총리, 김성주 적십자사 총재가 공동장의위원장을 맡는다.

1922년 북한 평안북도 창성에서 태어난 강 전 총리는 군과 외교, 정치,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대사의 굴곡과 운명을 함께하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헌신했다.

만주 건국대학 재학 중 학도병으로 징집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광복 이후 육군 제2사단장, 제6군단장, 육군사관학교장 등을 거쳤다. 육군사관학교장으로 재직하던 도중 1961년 5·16 군사정변이 발발하자 사관생도의 혁명 지지시위 동원에 반대하다 ‘반(反)혁명 장성 1호’로 체포돼 100일간 수감된 뒤 강제 예편됐다.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 72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77년 귀국한 뒤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장과 외교안보연구원장을 지냈다. 이후 주영국 대사, 주아일랜드 대사, 주로마 바티칸 교황청 대사 등을 역임했다.

노태우정부가 출범한 88년 13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의원으로 당선된 뒤 제21대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2년여간 재임하면서 직선제 이후 역대 3번째 ‘장수 총리’로 기록됐다. 분단 이후 최초로 90년 남북 총리회담을 서울에서 개최했고, 홍성철 당시 통일원 장관과 함께 북한 평양 주석궁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면담하는 등 남북관계의 새 장을 활짝 열었다.

91년 제18대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된 이후에는 7년간 민간 분야의 대북 지원사업을 주도했다. 97년 남북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를 제의하는 등 정부·민간의 대북 교류 확대에 굵은 획을 그었다. 이와 더불어 96년부터 2009년까지 유엔환경계획(UNEP) 한국위원회 총재를 역임하며 고령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유족으로는 배우자인 김효수 여사와 장남 강성룡 변호사, 차남 강효영 변호사, 딸 강혜연씨 등 2남1녀가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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