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내 아들로 인해 이 길을 왔네.. 돌아보면 운명이고 必然"

최보식 선임기자 2016. 5. 9.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증 지적장애인들이 일하는 '엘린호텔'.. 한봉금 원장] "정말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어 어려움이 계속되기에 그 속에서 못 빠져나와" "더 늙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절망적 고민에 빠져 장애인 아들과 끝까지 같이 할 수 없는 걸 알아"

제주도청 인근의 '엘린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객실은 33개다. 여기서는 비취색 원피스와 흰색 앞치마 차림의 중증 지적장애인들이 침대 시트를 갈고 객실과 욕실, 복도 청소를 했다. 호텔이 중증 장애인 직업 재활 시설인 것이다.

중증 지적장애인들이 단순 임가공 업체에 고용되는 경우는 있어도, 외부인들과 접촉하는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 사회복지법인에서 '중증 장애인 다수 고용 사업장 선발' 정부 공모에 '호텔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던 것이다.

중증 장애인들의 직업 기회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채택됐다. 2012년 정부 지원 사업비로 이 호텔을 매입했다. 그 뒤로 장애인 13명, 일반 직원(사회복지사) 8명이 함께 근무하게 됐다.

"중증 장애인들은 공장의 생산라인에 앉아 단순 작업을 한다는 통념 때문에, 처음에는 '정부가 호텔까지 사주느냐' '복지법인에 특혜를 줬다'며 말들이 있었습니다. 호텔 소유주는 제주도이고, 복지법인은 중증 장애인을 고용해 호텔을 운영하는 역할을 맡는 겁니다. 저나 일반 직원들은 매출 수익을 얼마 더 올렸느냐에 관계없이 봉급을 받습니다. 호텔 수익금은 제주도에 보고한 뒤 더 많은 장애인을 고용하는데 씁니다."

엘린호텔 원장인 한봉금(54)씨는 창암복지재단 소속이다. 호텔 경영을 전혀 모르면서 이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문을 연 뒤로 매년 3억원씩 매출이 신장돼왔다. 작년 매출은 12억5000만원이었다.

"중증 장애인이 객실 청소를 하는 호텔은 비위생적일 것이라는 편견을 가집니다. 하지만 우리 호텔은 2년 연속 제주도 숙박 위생 점검 최우수 등급을 받았습니다. 이불은 극세사로 바꾸었고, 시트는 객실 고객이 바뀌면 매일 세탁합니다. 객실의 컵은 수거해서 날마다 살균 소독하고요. 말로만 깨끗하다는 것이 아니라, 청결 증빙 서류가 있습니다."

―청결 증빙 서류라는 것도 있습니까?

"세탁비 영수증 등이 그런 증빙 서류가 됩니다. 객실이 33개인데 한달 세탁비만 평균 400만원이 듭니다."

엘린호텔에는 장애인 리프트 차량과 전동·일반 휠체어, 점자 블록 및 표지 등이 마련돼 있다. 객실마다 세면장에 장애인을 위한 안전 바(bar)와 의자가 있는 것도 이 호텔만의 특징이다.

―호텔은 서비스업이지만, 객실 청소는 결국 단순 작업인데요?

"침대 시트를 가는 일은 장애인에게는 생각보다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일반인은 하루에 객실 열다섯개쯤 청소하지만, 장애인은 4~5개밖에 못 합니다. 지적장애인들은 집중력이 떨어져 오래 하면 힘들어해요. 이곳 근무 시간도 개인에 따라 4시간, 5시간, 7시간씩 탄력적으로 합니다. 호텔 근무는 고객들과 접촉한다는 점에서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관리 측면에서 어렵습니다. 이들을 계속 따라다니며 관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까?

"이들의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반응을 고객이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객이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도 하고요. 자신에게 친절을 보여준 고객에게는 객실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하거나 너무 아는 체합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거나 불편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객실에서 수건을 더 갖다달라고 하면, 정중하게 수건을 내줘야 하는데 '자-' 하고 한손으로 준다든가 하는 실수도 나옵니다. 날마다 반복 교육을 시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아요. 이런 얘기를 많이 하면 호텔 영업에 도움이 안 됩니다."

―호텔 근무는 장애인의 직업 영역을 확장시키는 측면이 있겠지요?

"장애인들은 공장 생산 라인에 앉아서 단순 반복 작업만 했으니까요. 새로운 영역을 만들었다고 할까요. 우리 직원들이 폼을 잡고 으스대는 걸 보면, 감사하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공무원들이 우리 호텔의 운영 사례를 듣기 위해 가끔 찾아오기도 합니다. 장애인들에게 보조금을 나눠주는 것보다 그 재원으로 이렇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더 올바른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호텔에서 일할 중증 지적장애인들은 어떻게 뽑습니까?

"장애인 단체 등에서 추천받습니다. 두 달간 직무를 시켜봐서 매뉴얼에 따라 일을 해낼 수 있는지 판단합니다. 어떤 아이는 제 나름으로는 객실 청소를 했는데 끝나고 보면 더 어질러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일할 수 있는 중증 지적장애인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일반 직원들이 사회복지사여서 매일 관리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호텔 관리자로서 대화를 사무적으로 하는 그녀는 사실 스물다섯 살 장애인 아들을 두고 있다.

"젊었을 때는 제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못 꿨던 겁니다. 아무 관계가 없었지요. 내 아들을 낳고서 이렇게 오게 된 겁니다. 돌아보면 운명이고 숙명이고, 필연 같습니다."

뇌병변장애(腦病變障�)를 앓는 아들은 척추가 휘고 골반이 빠져 있다. 아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고 체격이 커져도 자립할 수 없다. 세월이 갈수록 오히려 그녀가 짊어진 짐의 무게는 무거워질 뿐이다. 이제는 장성한 아들을 씻기고 옷 갈아입히거나, 휠체어에 태우고 부축해야 할 때면 힘에 부치게 됐다.

―아들도 이 호텔에서 일합니까?

"아들이 이렇게 일할 수 있는 장애라면 축복이겠지요."

―축복이라는 뜻은?

"그렇다면 저는 '하루하루 고행이고 전투'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노력해서 안 될 게 없다고 하지만, 장애의 경우는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마지막에 기대는 게 세월 아닙니까. '세월이 가면 어떻게 되겠지'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이가 성장해도 바뀌는 게 없습니다. 집안에 장애인이 한 명 있으면 온 가족이 매이게 돼요. 온 가족이 합심해도 그 한 명을 돌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안 겪어본 저로서는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고통을 모릅니다.

"장애인 가정의 고통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남들 앞에서 늘 울면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들을 키우면서 저는 어려운 사람에 대한 생각…, 희망과 체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희망과 체념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는 사람들은 '열심히 하면 못 살 이유가 어디 있나'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게을러서 어려움에 처한 게 아니라, 어려움이 계속되기 때문에 그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삶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장애는 치료될 수 없는 겁니까?

"장애 발현을 최소화시키는 것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는 '노력을 하면 극복 안 되는 게 없다'고 말하지만, 그런 말은 장애인 부모에게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줍니다. 정말 해도 안 되는 게 있습니다."

그녀의 아들은 생후 다섯 달 때 경기(驚氣)를 일으키며 발병했다. 그 뒤로 아들을 고치기 위해 전국에 용하다는 데는 안 다녀본 곳이 없었다. 아들 치료를 위해 서울에 올라와 몇 달 살기도 했고, 미국까지 다녀왔다.

"그 시절만 해도 어디서 상담해야 할지, 어떤 치료를 받고 어떤 재활운동을 시켜야 하는지 장애인 관련 정보가 없었어요. 저는 뭔가 씐 것처럼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렇게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정신 차리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제가 떠나올 때 다섯 살이었던 큰딸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있었어요. 어쨌든 집에서 누군가는 아들을 전담해야 했어요. IMF 때 남편이 명예 퇴직을 신청했어요. 지금도 남편이 아들을 주간 보호시설에 태워다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2000년 제주 장애인부모회를 창립했다. 인구 64만 제주도에만 장애인 숫자가 5만명쯤 된다. 부모회 활동을 하면서 그녀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했고, 지금의 사회복지법인에 들어갔다. 아들의 장애인 문제를 고민하다가 그녀가 직업을 갖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 호텔 말고도 장애인 37명을 고용한 건물 청소 용역 업체인 '엘린클린'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세월이 더 흘렀을 때 아들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까요?

"늘 생각합니다. 우리가 더 늙으면 어떻게 할까. 장애인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대부분 이런 절망적인 고민에 빠질 겁니다. 우리가 늙으면 끝까지 같이할 수가 없다는 걸 압니다. 현실적으로 아들을 보호시설에 맡기는 방법밖에는 없겠지요."

―아들은 부모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을까요?

"아들이 표현을 못 하니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인지(認知) 능력이 서너 살밖에 안 될 겁니다. 자동차를 구경하는 걸 좋아하고, 집 뜰에 새가 날아오면 신기해서 소리칩니다. 그러니 우리를 과연 부모로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이 자기를 돌봐주면 어쩌면 우리를 잊어버릴 것 같아요."

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자식은 없을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부모는 있다.

아침에 1층 호텔 로비로 내려가 보니, 막 출근한 장애인 직원들이 음악에 맞춰 국민체조를 하고 있었다. '엘린'은 라틴어로 '행복한'이라는 뜻이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