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추억, 차곡차곡 담아드릴게요"

입력 2016. 5. 6. 03:02 수정 2016. 5. 6.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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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은 어버이날]딸이 직접 쓴 '부모의 자서전'.. "내 존재만으로 위로가 된다니 정말 기뻐"

[동아일보]
《 “아빠도 다른 사람에게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한 적이 있었느냐’라고 물어보곤 해요. 물론 나도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했었지. 우리 딸도 한여름 밤의 꿈같은 사랑도 해보고, 시련을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으면 좋겠어.” 딸이 “10대 시절 아빠에게도 사랑이 있었나요”라고 묻자 아버지가 수줍어하면서 온화한 얼굴로 들려준 대답이다. 평소와 달리 존댓말을 섞어가며 답했다. 》

10대 시절 아빠에게도 사랑이 있었나요? 나는 부모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했던 말을 왜 반복하세요?-15세 딸 아연
한여름 밤 꿈같은 사랑을 해보렴. 널 처음 안았을 때의 감동 잊을 수 없어. 추억 계속 쌓아 가자꾸나.-46세 아빠 김승완
3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에서 아버지 김승완 씨(46)와 외동딸 아연 양(15)이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연 양이 어버이날을 맞아 아버지에게 줄 ‘특별한 선물’을 만들기 위한 인터뷰였다. 아연 양은 출생부터 현재까지 아버지의 삶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아빠의 인생을 재구성했다. 딸의 특별한 선물은 아버지의 자서전이다.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망설였는데 딸이 자서전을 쓰겠다며 용기를 냈다.
딸은 무엇보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궁금했다. 가장 어릴 때의 기억을 물었다. 아버지는 “여섯 살 때 아빠의 엄마, 아빠랑 온 가족이 함께 김밥을 만들어 공원에 놀러 간 기억이 난다. 그날 찍은 사진 속 가족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고, 부라보콘을 처음 먹은 기억이 생생하다”고 웃으며 답했다. 딸도 아버지의 얼굴에서 여섯 살 소년이 그려지는지 환히 웃었다.

아버지가 지금의 딸 나이가 됐을 때는 무얼 하고 놀았을까. 아버지는 “도시락 싸서 배낭 메고 기차 여행을 갔다”고만 말했다. 단답형 답변에 약간 실망한 딸의 표정을 읽었는지 아버지는 오래 간직한 비밀을 털어놓듯 수줍게 답했다. “사실 아연이 나이일 때 아빠는 이성 친구에게 관심이 많았어요. 또래나 나이 어린 친구보다 교회에서 피아노 치던 누나처럼 연상이 좋았어. 괜히 아연이가 이성에 일찍 눈을 뜰까 걱정돼서 이야기해 주지 못했단다.”

아버지의 자서전에서 딸이 빠질 수 없다. 서른 이후 아버지 인생에서 딸은 주연(主演)이었다. 아버지는 “갓난아기였던 너를 처음 안았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후 벼랑 끝에 놓인 듯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아연이의 재롱에 힘을 냈다. 아연 양은 “부모님에게 내 존재가 위로가 됐다니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자서전 인터뷰니 평소라면 묻지 못할 질문까지 나왔다. 아버지의 장단점과 인생의 가치관, 인생에서 후회한 순간, 삶의 전환점과 목표 등이다. 아버지는 인생 최고의 목표가 뭐냐는 딸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우리 가정을 행복하게 지켜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서로 오해도 풀었다. 평소 딸은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아버지가 불만이었다. 어쩌다 대화를 어렵게 시작하더라도 ‘사회적 양극화 현상’ 같은 딱딱한 주제를 입에 올렸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딸과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정작 무슨 대화를 꺼내야 할지 몰랐다. 내 관심 분야를 이야기하면서 주장을 관철하려고 반복해서 말했다”며 미안해했다.

딸은 몇 차례 더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완성한 자서전을 어버이날 선물할 계획이다. 딸은 “아버지의 어린 시절, 나를 낳았을 때 추억 등 평소 몰랐던 이야기를 들어 더 친밀해진 것 같다”며 “옆에 계신 것만으로 든든한 존재가 아빠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생애 가장 특별한 선물이 될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부녀는 “앞으로 기억에 남을 많은 추억을 쌓아가자”고 약속했다.

한국의 보통 부모와 자녀는 일주일에 1시간 정도밖에 대화하지 않는다. 소통 전문가들은 자녀가 부모 세대의 인생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정리하는 것은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는 부모와 자녀 간 깊은 소통의 계기를 마련해주기 위해 ‘내가 쓰는 아빠, 엄마 이야기’ 공모전을 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7월 31일까지 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한다. 수상자에겐 상장과 부상을 주고 수상작은 책으로 묶어 발간할 예정이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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