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판다 아빠'.. 대나무 찾아 삼만 리"

용인/심현정 기자 입력 2016. 5. 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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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 28년 차 사육사 강철원씨] 中 시진핑이 선물한 판다 한 쌍.. 입맛 까다로워 먹이 찾느라 고생 "힘든 삶에 동물이 큰 위로가 되죠"

"러바오(樂寶·기쁨을 주는 보물·수컷·3.5세), 눈 좀 떠 봐. 그만 자고 일어나 빵 먹어야지."

지난 4월 28일 오후 3시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사육사 강철원(47)씨가 낮잠에 빠져 있는 판다 러바오를 향해 읊조렸다. 평상 모서리에 몸을 늘어뜨린 채 미동도 없던 러바오가 끔뻑끔뻑 눈을 떴다. 100㎏에 육박하는 거구를 겨우 일으키고 앉아 빵을 입에 넣더니 눈을 감았다.

"음미하는 거예요. 저 상태로 4~5분 가만히 있다가 대나무를 먹죠." 나무에 올라 빨래처럼 몸을 걸친 채 잠든 아이바오(愛寶·사랑을 주는 보물·암컷·2.5세)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강철원씨는 28년 차 사육사다. 고교 졸업 후 1988년 자연농원(에버랜드의 옛 명칭)에 입사했다. 지금까지 동물 80여 종이 그의 손을 거쳤다. 1989년 국내 최초로 맹수 인공 포육에 성공해 이름을 알렸다. "어미가 포기한 표범 새끼였는데 세 시간마다 찾아가 젖을 먹여 살렸어요."

강씨가 판다를 맡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한·중 수교를 기념해 1994년 중국이 한국에 선물한 판다 밍밍과 리리를 4년간 돌봤다. "판다를 키우는 나라는 중국에 판다 보호 기금을 연간 100만달러씩 내야 해요. 1998년 IMF 외환 위기 때 '판다 키우는 건 사치'라는 여론이 있어 돌려보냈어요."

18년 만에 판다들이 다시 왔다. 2014년 시진핑 중국 주석이 한국에 선물하기로 한 판다였다. 강씨가 이들을 만난 건 올 초 중국 쓰촨성 두장옌(都江堰) 판다 기지에서였다. "다섯 마리 중 두 마리를 선택하고 보니, 잃어버린 자식들을 다시 찾은 느낌이었죠." 그는 현지에서 러바오·아이바오와 2개월을 보내고 지난 3월 함께 한국으로 왔다.

"판다는 사육 난도(難度)가 높은 동물 중 하나"라고 했다. 입맛이 까다로워 먹이 냄새를 맡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건드리지도 않는다. "밍밍·리리 때는 대나무 찾으러 퇴근 후 트럭을 몰고 전국을 돌았다"는 강씨는 "이번에도 중국 측 사육사와 경남 하동에 내려가 대나무를 살펴 보고, 받았다 돌려보내기를 몇 차례 거듭했다"고 했다. "특히 임신이 어려워요. 둘이 짝을 맺어야 하는데 성욕이 낮고 가임기가 연간 2~3일뿐이거든요. 그래서 판다(세계 2000여 마리)가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된 거예요."

그에게 판다는 사랑의 오작교였다. 아내는 20여 년 전 에버랜드에서 밍밍·리리에 대해 안내하던 직원이었다. "내가 열정적으로 동물을 돌보는 모습에 반했다더라"며 "키가 10㎝ 작고 나이는 여덟 살 많은 나를 좋아해 준 게 판다 덕"이라고 했다.

강씨는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소를 몰고 다니며 카우보이를 꿈꿨다. "사육사로 살면서 나를 힘들게 한 건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고 했다. "90년대 초 동물원에 온 한 어머니가 아들 손을 잡고 저를 가리키며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고 하더군요. 요즘은 달라요. 사육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죠."

그는 "사육사는 귀여운 새끼 호랑이나 껴안고 뒹구는 직업이 아니라 오물 치우고 먹이 다듬는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며 "그런 시간을 견디면 동물들과도 인간 이상의 우정을 쌓게 된다"고 했다. "힘든 삶에 동물들이 큰 위로가 돼요.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되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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