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 폭발로 오른손 잃었지만 꿈은 강해졌죠"

인천/박건형 기자 2016. 4. 22.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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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SA 수석 연구위원 최상혁 박사 일흔두 살에도 최전선에서 연구.. 한국에 나사 교육센터 설립 예정 "성과주의 버리고 실패 무릅써야"

소년은 몰래 들어간 춘천 미군부대 천막극장에서 로켓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영상을 보았다. 그 순간 "내 손으로 로켓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고등학교 때는 미국 잡지를 보며 설계도를 그리고 고물상에서 부품을 구해 소형 로켓을 만들어 소양강변에서 쏘아 올렸다. 대학 시절 로켓 폭발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꿈 하나만 좇은 끝에 세계 최고의 연구소에서 인정받는 과학자가 됐다.

미 항공우주국(NASA) 랭글리 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인 최상혁(72) 박사는 21일 "초등학교 시절부터 로켓과 우주에 미쳐 평생을 살았지만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917년 세워진 랭글리 연구소는 NASA 산하 10여개 연구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주 로켓과 비행기에 사용되는 기초과학을 연구한다. 최 박사는 36년째 랭글리 연구소에 몸담으며 '최고 과학자상' '최고 기술이전상' '최고 특허상' 등 수십 개의 상을 받았다.

그의 발명 중에는 레이저나 전자파를 이용해 우주선이나 화성·달 기지 등에 전력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술도 있다. 최근 스티븐 호킹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초소형 우주선을 레이저로 가속해 태양계 밖으로 보내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를 핵심 기술로 꼽았다. 1980년대에는 우주 공간에서 지상이나 공중의 적군을 공격하는 방위 프로그램인 '스타워즈'에도 참여했다.

일흔이 넘었지만 최 박사는 아직도 연구 최전선에 있다. 그는 "NASA는 연구자들이 갖고 있는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연구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면서 "나 역시 은퇴를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원자력을 대체할 우주탐사선용 동력원과 장치를 개발 중이다.

인천 인하대 공과대 앞에는 조그마한 로켓 모형이 세워져 있다. 최 박사가 이 대학 병기공학부 신입생 시절 주도해 만들었던 한국 최초의 3단 로켓이다. 1964년 소래포구에서 발사에 성공하며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하지만 대학 3학년 때 모교인 춘천고등학교에서 로켓 발사 시연을 하다 폭발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물리 교사가 됐지만 로켓에 대한 열정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혼자 로켓을 만들었던 경험을 담은 편지는 미국 오리건주립대 로린 데이비스 교수의 마음을 움직였다. 최 박사는 "박사 학위를 받은 1980년 NASA 랭글리 연구소에 입사하며 평생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거의 매년 한국을 찾고 있다. NASA에서 얻은 경험이 모국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NASA 교육센터를 한국에 세우겠다는 계획은 실현 단계에 와 있다. 최 박사는 "한·미 양국이 맺은 우주협력협정이 선언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한국에 도움이 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2020년 달에 착륙선을 보내겠다는 우주개발 계획을 추진 중이다. 최 박사는 "NASA가 세계 최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축적한 지식 덕분"이라며 "한국도 언제까지 뭘 하겠다는 목표보다는 그걸 통해서 뭘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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