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스토리가 있는 숲을 팝니다".. 우리는 나무 심는 비즈니스맨

성유진 기자 2016. 4. 1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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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기억의 숲' 조성.. 벤처기업 '트리플래닛' 김형수 대표·정민철 이사 '나무 키우기' 게임 앱으로 시작, 소녀시대숲·지드래곤숲..12개국에 116개 숲 만들어 '세월호 기억의 숲' 완공, 나무 枯死하면 유족 슬퍼할까봐 희생자 수 대신 300그루만 심어

2014년 5월 오드리 헵번의 아들 숀 헵번이 한국 기업에 이메일을 보내왔다. "세월호 사고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 사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숲을 조성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받은 기업은 '트리플래닛'이라는 곳이었다. 이제 막 5년 차에 접어든 벤처회사였다. 숀 헵번이 트리플래닛에 메일을 보낸 이유는 이 회사가 숲을 만들어 팔기 때문이었다. 숲을 만들고 싶어 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돈을 모으면 트리플래닛이 숲을 조성해주는 형태였다.

지난 9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인근에서 '세월호 기억의 숲' 완공식이 열렸다.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후원한 3000여명, 세월호 유가족, 그리고 트리플래닛이 함께 만든 숲이다. 트리플래닛의 김형수(29) 대표와 정민철(30) 이사를 지난 11일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군대에서 선·후임으로 만나 제대 후 함께 트리플래닛을 창업했다.

숲에 이야기를 입히다

트리플래닛은 2010년 '나무 키우기' 게임 앱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게임에서 물과 거름을 주며 나무 한 그루를 키워내면 실제 나무 한 그루가 심어진다. 게임은 무료고 실제 나무를 심는 비용은 기업이 지불한다. 게임에서 나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물뿌리개나 거름에 '한화의 물뿌리개' 식으로 기업 이름을 붙여 광고하는 방식이었다.

2012년 게임 앱을 관리하던 김 대표는 이용자들이 나무에 연예인 이름을 붙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 대표는 "개인이나 단체에 돈을 받고 그들의 이름을 딴 숲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숲인 '신화숲'이 서울 개포동에 탄생했다. 댄스그룹 신화 팬들이 돈을 모았다. 한번 이런 숲이 만들어지자 팬클럽과 각종 단체에서 숲을 만들고 싶다는 문의가 밀려 들어왔다. 서울 여의도에는 '소녀시대숲'과 '지드래곤숲'이 생겼고, 경기 파주의 도라산 평화공원에는 '폴매카트니 평화의 숲'이, 인도에는 '성균숲(성균관대 숲)'이 생겼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만든 숲이 전 세계 12개국에 116개나 있다. 심어진 나무만 55만 그루가 넘는다. 숲들은 대개 400~500그루 규모이고, 나무 가격은 관목의 경우 그루당 2만~3만원, 교목은 20만~30만원 수준이다.

트리플래닛은 얼핏 환경단체와 조경업체를 합쳐놓은 회사처럼 보인다. 김 대표는 "나무를 심는다는 면에서는 같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숲의 스토리를 판다는 면에서 다르다"고 했다. "아이 돌잔치 비용으로 숲을 만들고 싶다는 부부가 있었어요. 하루면 끝나는 돌잔치와 달리 숲은 아이가 오십 살, 육십 살이 됐을 때도 남아 있잖아요. 우리가 파는 건 '환경보호'라는 가치라기보다 그런 스토리예요."

결과적으로는 환경보호에 일조한 셈이지만 트리플래닛 사람들이 모두 환경보호론자인 것은 아니다. 정민철 이사는 "환경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숲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게 우리의 모델"이라고 했다. "다들 환경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사람은 소수잖아요. 우리 회사에선 평범한 사람들도 숲을 만들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는 특별한 선물로 생각하니까요."

트리플래닛 고객들은 서로 먼저 숲을 만들겠다고 재촉하고 더 크게 숲을 만들고 싶어 한다. 어떤 나무를 심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하고 나무가 시들면 제일 먼저 연락해오는 것도 고객들이다. 정 이사는 "기부를 하는 방식이었다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열정적이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군대에서 텃밭 가꾼 병사들

김 대표는 원래 환경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꿨다. 고교 시절 수목장과 고래 불법 포경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어 상을 받기도 했다.

정 이사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 고교를 졸업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애니메이션과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유기농을 비롯한 환경문제를 논의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채식주의자였던 한 친구는 어머니가 '채소 선생님'이더라고요. 학교 한쪽에 텃밭을 마련해 거기에서 채소를 키우고 먹는 법을 가르치는 교사인 거죠. 한 오스트리아 친구는 체르노빌 사건이 그 친구가 살던 마을에까지 영향을 미쳐 마을 사람 중에 암에 걸린 사람이 많았대요. 그런 친구들과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두 사람은 2008년 육군본부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선·후임으로 만나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부대 한쪽에 텃밭을 다지고 근처 교회에서 얻어온 씨앗을 뿌렸다. 야심 차게 시작한 농사는 그러나 두 달 만에 끝이 났다. 물이 부족해 말라죽거나 해충이 생겨 자라지 못했다. 어쩌다 제대로 자란다 싶으면 인근 산에서 야생동물이 내려와 새싹을 먹어치웠다. 김 대표는 "그때 어렴풋이 나무를 심고 관리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했다"고 했다. "뭔가를 키워낸다는 게 생각만큼 쉽진 않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나무를 직접 심고 가꾸기는 어렵다는 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무 심는 회사를 떠올리게 됐어요."

제대 후 둘은 바로 트리플래닛을 창업했다. 앱 다운로드 건수가 100만 건을 넘었고 게임에 광고할 기업 파트너도 어렵지 않게 구했다. 문제는 실무적인 부분이었다. "지자체에서 땅을 제공받아야 하는데 신생 업체다 보니 "우리가 뭘 믿고 땅을 주느냐"는 반응이 많았죠. 땅마다 심을 수 있는 수종이 다르고, 팔 수 있는 깊이도 제각각이고, 심지어 숲 이름 현판도 정해진 규격이 있더라고요."

세월호를 기억하는 은행나무숲

숲의 개수가 늘어나며 조금씩 노하우가 쌓였다. 지자체에서 먼저 땅을 제공해주겠다고 연락이 오기도 하고 트리플래닛의 뜻에 공감해주는 조경 파트너도 생겼다. 그러나 '세월호 기억의 숲'은 이들에게도 도전이었다. 정 이사는 "이렇게 큰 사회적 이슈에 발을 들여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가 그동안 만들어 온 건 행복한 스토리를 입힌 숲이었잖아요. 그런데 세월호는 '죽음'의 문제였으니까요. 이게 잘될까, 괜히 논란에 휘말리면 어쩌지 하고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결정을 내리기 전 두 사람은 미국 뉴욕의 '9·11 메모리얼 파크'로 향했다. 9·11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었다. 사람들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고 공원을 산책했다. 정 이사는 "뉴욕에 다녀온 뒤 죽음을 추모하는 데 우리의 방식이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세월호 숲 조성을 시작했다. 숀 헵번이 5000만원을 내놓았고, 일반시민과 단체에서 돈을 보내와 2억원이 모였다. 지난해 나무를 심기 시작해 15~20년생 은행나무 300그루가 1년여 만에 팽목항에서 4.16㎞ 떨어진 무궁화동산에 심겼다. 김 대표는 "원래는 희생자 숫자와 동일한 304그루를 심으려고 했는데 혹시 나무가 고사(枯死)하면 유가족들이 마음 아파할까 봐 300그루만 심었다"고 했다.

트리플래닛은 세월호숲 외에도 연평해전 전사자들을 기리는 '연평해전 영웅의 숲'과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소녀들을 기억하는 숲'도 조성했다. 김 대표는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숲을 조성할 땐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트리플래닛은 고객에게서 받은 돈의 85%가량은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데 쓰고 나머지 15%로 회사를 운영한다. 김 대표는 "보통 벤처기업보다 적지도 많지도 않게 번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입사한 직원 이야기를 꺼냈다. 대형 제지업체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동남아에서 나무 베기를 감독하던 분이에요. 우리 회사로 옮겨오며 월급은 줄었지만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하세요. 조경학과를 나와 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된 일인 것 같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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