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 버스는 '서민의 발'..情(정)으로 경영해야죠"

입력 2016. 4. 11.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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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회사 '사이공 스타' 이동철 대표 인터뷰
베트남 호찌민의 운수회사 '사이공 스타'를 이끄는 이동철(52) 대표.
베트남 호찌민의 운수회사 '사이공 스타'를 이끄는 이동철(52) 대표.

운수회사 '사이공 스타' 이동철 대표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임신 중인 데다 짐도 많아서 힘든 하루였어요. 친절하게 도와주신 덕분에 편안하게 버스를 탔습니다. 감사합니다."

베트남의 '경제 1번지'인 호찌민. 복잡한 도로 사이로 오토바이가 내달리는 바쁜 도시다.

하지만 한 시내버스 회사로 이런 내용의 '감사 편지'가 종종 도착한다. 승용차도, 오토바이도 없는 서민에겐 여전히 시내버스가 두 발이 되기 때문이다.

수신인은 다름 아닌 한국인.

9년째 운수회사 '사이공 스타'를 이끄는 이동철(52)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호찌민에 있는 시내버스 회사 13개 중 유일한 한국인 대표다.

어떤 사연일까.

이 대표는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저도 제가 호찌민에서 버스 회사를 운영하면서 살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면서 "거창한 성공기는 아니지만 우여곡절도 많고, 배운 점도 많다"고 돌아봤다.

그가 걸어온 길은 말 그대로 바다와 국경을 넘나든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청년은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들겠다"며 26살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처음에는 어학연수로 갔죠. 현지 대기업에 취직도 하고 가정도 꾸리면서 터를 잡았습니다. 군대에서 자재 관리, 항공기 정비 등을 맡았는데 마침 일본에서도 업무에 요긴하게 쓰였죠. 일본인 회장의 눈에 들어 중책도 많이 맡았고요. 무조건 열심히 일했습니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지만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임원 자리는 못 갈 거라 짐작했어요. 1990년대 후반 일본 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구조조정 광풍이 불기도 했고…. 이래저래 마음이 무거웠죠. 때마침 출장을 가게 된 곳이 호찌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한 인연이죠(웃음)."

2005년이던 당시 이 대표가 찾아간 곳이 '사이공 스타' 차고지.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에 버스 60여 대를 운행하는 적자투성이 회사였다.

그러나 이 대표가 느낀 '촉'은 달랐다. 그해부터 인수를 준비해 2007년 지분 절반가량을 보유한 대표가 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1970년대 시골을 연상케 하는 호찌민에서 그는 어떤 가능성을 봤을까.

"여기저기 공사판이고,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뒤엉켜 다녔죠. 하지만 그만큼 발전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이공 스타'가 보유한 부지도 훌륭한 자산이 되리라 생각했죠. 무엇보다 호찌민 사람들이 무척 정겹고 개방적이더라고요. 길거리 가게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는데 다들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어요. 성장 가능성을 봤습니다."

그 길로 호찌민의 '미스터 리'가 된 그는 최우선 과제로 경영 정상화에 매달렸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사회주의 아래 수년간 누적돼온 비효율이 회사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

"당근과 채찍을 도입했어요. 연료나 경비를 절감한 직원에게 그만큼 보너스를 주고,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벌점을 줬어요. 운전기사, 승차 안내원, 경리 할 것 없이 대충 근무시간이나 때우던 직원들이 점차 변해갔죠. 저하고도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되고…. '직원들이 일하는 회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행여나 '외국인 사장님'이 온 뒤 노동조합과의 갈등은 없었을까.

이 대표는 "취임 초부터 '상생 노사'라는 구호를 내걸고 노조와 협력하고 있다"면서 "지금도 사장과 부사장 두 명을 제외한 직원 300여 명을 모두 현지인으로 채용했다"고 말했다.

'사이공 스타'는 2010년 부채를 모두 털고 흑자 경영으로 돌아선 뒤 이젠 연 매출 500억 동(약 26억 원)을 올리는 탄탄한 회사가 됐다. 100대의 차량을 보유해 호찌민 시내버스 회사 중 2위 규모다.

승객 서비스도 차츰 개선했다. '교통지옥'인 호찌민에서는 서민에겐 시내버스가 승용차이자 오토바이자 두 발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크게 내세울 만한 서비스는 아직 없는데…(웃음). 버스 요금은 4년째 5천 동(약 260원)으로 동결 중이고요. '어려운 처지의 승객을 배려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긴 하죠. 가끔 짐이 많은 승객을 태우느라 어쩔 수 없이 주정차 위반을 하는 버스도 있거든요. 운전기사를 따로 불러 '잘했다'고 귀띔해줘요. 물론 다른 직원들은 없을 때 해야죠(웃음)."

호찌민은 베트남에서도 눈부신 발전을 이룬 경제의 심장이다. 하루아침에 빌딩이 들어서고 영어 전광판이 내걸리면서 지난해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6.7%를 기록했다.

성장의 반대편에선 그늘도 깊어진다. 호찌민에서도 옛 이름 사이공은 점점 잊히고, 새하얀 아오자이를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는 여인도 사라져 간다.

이 대표는 "9년에 걸쳐 호찌민이 이룬 발전을 직접 겪어 보니 그야말로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면서도 "하지만 우리 시내버스는 어제도, 오늘도 한결같은 노선을 운행해 서민의 두 발이 됐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사이공 스타' 버스의 연간 승객은 5개 노선에 걸쳐 약 700만 명. 오늘도 버스는 호찌민 구석구석을 달린다.

newgla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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