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법의학을 연 92세 문국진 박사의 '인생 이모작'

취재 김병수 기자 2016. 4. 1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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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인생 2막을 춤추게한다

문국진 박사는 우리나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창설멤버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다. 의대 3학년 때 소나기를 피해 잠시 들른 헌책방에서 발견한 일본 법의학자 후루하타 다네모노가 쓴 《법의학 이야기》라는 책의 한 구절을 보고 ‘인간의 권리’를 다루는 법의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헬스조선]문국진 박사

1990년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아직도 부검을 계속하고 있다. 다만 부검의 대상이 사람에서 책이나 그림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세계적인 문호나예술가의 사인과 작품을 의학적 관점에서 규명하고 해석하는 ‘법의탐적학(法醫探跡學, Medicolegal Pursuitgraphy)’은 그가 세계 법의학계에 처음으로 선보인 학문이다. 세계 유일의 법의탐적학자로서의 청춘을 보내고 있는 문국진 박사를 만나봤다.

 

문국진 박사는…


의사이자 의사평론가다. 1925년생으로 호는 ‘도상’이며, 그의 호를 딴 ‘도상법의학상’이 제정했다. 올해 4회째 수상자를 선정하게 된다. 서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과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뉴욕대 의과대학 법의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헬스조선]문국진 박사

현재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대한법의학명예회장, 고려대 명예교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평화교수 아카데미상, 동아의료문화상, 고려대 교수 학술상과 함춘대상,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법의학 전문서적으로 《최신법의학》, 《고금무원록》 등이 있으며 교양서적으로 《새튼이와 지상아》 등 9권, 예술과 의학을 다룬 서적 《명화와 의학의 만남》, 《미술과 범죄》 등을 포함해 총 53권의 책을 출간했다.

 

문국진 박사의 자택에 들어서자 커다란 흉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1990년 고려대 의대 교수 퇴임을 기념해 제자들이 만들어준 흉상이다. 훤칠한 키에 아직도 꼿꼿한 자세를 감탄하고 있던 차에, “내가 학생 시절에는 국가대표급 배구선수였다”며 사진기자의 무거운 장비를 손수 옮겨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대중에게 ‘법의학’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헬스조선]고려대 실험실


매스컴의 영향이 컸다고 봐요. 현실과 다소 괴리가 있지만 과학수사를 소재로 한 <CSI>라는 미국 드라마가 인기를 끈 것도 있고요.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고발프로그램이나 <싸인> 같은 법의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영향이 컸습니다. 실제로 드라마가 히트한 해에는 법의학과 입학지원자가 많이 늘어나기도 했어요.

국내 최초의 법의학자십니다. 임상의로 남지 않고 새로운 학문에 도전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금도 일본의 헌책방에서 본 《법의학 이야기》의 서문이 생생합니다. ‘사람에게는 생명도 중요하지만, 권리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임상의학이라면, 사람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은 법의학이다. 고문수사는 절대 안 되고 반드시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법의학은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발달된 민주국가에서만 발달한다’는 글귀죠. 저는 지금도 이 구절을 떠올리면 감동이 밀려옵니다. ‘인간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이 있다니 얼마나 가슴이 설레던지. 그때까지 전공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책을 사서 다 읽고는 법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어요.

당시에 유학을 떠나셨습니까?

[헬스조선]뉴욕대 법의학교수 시절


아뇨. 당시에는 일본과 국교 수립이 안 되어 있어서 일본으로 가서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책의 저자하고 편지를 주고받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죠. 홍콩에서 일본을 오가며 무역을 하는 친구의 형이 서신 왕래를 도와주겠다고 해서 편지를 보냈죠. 편지가 오가는 데 한 달씩 걸렸어요. 물론 후루와타 교수는 제 열의에 감동했는지, 친절하게 제 스승이 되어주기로 했습니다.

 

스승의 응원을 받지 못해 많이 섭섭했겠어요.


네, 물론이죠. 서울대학이 경성제대 시절에는 법의학교실이 있었어요. 광복 후에 의학교육이 미국식으로 바뀌면서 법의학교실이 없어졌죠. 당시 우리나라 사찰단이 미국에 가보니 의대에 법의학교실이 없으니 귀국해서 없앤 거예요. 사실 미국은 국가 단위에서 법의학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거죠.

[헬스조선]문국진 박사

답답했어요. 일본으로 밀항할까도 생각했는데, 당시 의과대학장인 이제구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죠. 병리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사실 법의학을 위해서 왔다고 하니까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교수님이 사흘 뒤에 연락이 왔어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독립기관으로 발족하는데 법의관이 필요하다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법의학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법의관에 대한 대우는 어땠습니까?


법의학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 검사들의 횡포는 정말 참기 힘들었어요. 게다가 월급이 당시 돈으로 3000원 쌀 한 가마니 값이었거든요. 제 의대 동기들이 1만5000원을 받을 때니 생활이 궁핍했죠. 생활고 때문에 다시 외과의사를 하겠다고 장기려 박사를 찾아갔는데, 당신 말 듣지 않고 갔다며 안 받아주시는 거예요. 그러고는 한 우물을 5년을 팠으니 계속 파면 후회하지 않을 날이 올 거라고 하셨어요. 만일 그때 장 박사님이 저를 받아주셨으면 제가 법의학자의 길을 걷지 못했을 겁니다.

 

[헬스조선]문국진 박사

문국진 박사는 1976년 고려대에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교실을 연다. 당시 고려대 김상협 총장은 동경대 법학부에서 법의학 강의를 듣고 우리나라에도 법의학교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문 교수는 법의학교실 슬로건을 ‘사람은 꽃이다. 부드럽게 대하라’라고 정했다.

슬로건을 직접 지으셨어요?


네. 제가 만든 말입니다. 법의학교실이라고 해서 죽음, 인권 같은 것만 내세우면 재미가 없죠. 결국 법의학도 인간 중심 학문입니다.

지금 법의학교실 현황은 어떤가요.


지금은 13군데 대학병원에 있습니다. 지금 법의학자가 되려면 의대 6년 졸업하고, 병리학전문의 5년을 따고, 법의학교실에서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현재 약 80명이 전공하고 있어요. 이런 성과를 내는 데 35년이 걸린 셈이죠.

요즘 의사들이 사망진단서도 제대로 못 쓴다고 일침한 적이 있으시죠?


과거에는 사망진단서를 ‘아무개가 죽었다’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병사, 자연사라면 병명만 쓰면 되지만, 외부 요인에 의해 사망했다면, 선행 사인을 순서대로 써야 합니다. 총을 맞은 사람이 있다면, 총창(총에 의해 난상처)이 선행사인이고 심정지는 직접사인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구분하려면 가슴을 열어봐야 하죠. 지금 의사들이 잘 못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의사국가고시에 법의학 과목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만 생각해보니 그의 나이가 92세다. 하지만 큰 키는 조금도 줄어든 기색이 없고, 앉은 자세나 서 있는 자세나 어르신의 모습이라고는 생각들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고 바른 모습이었다.

평소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거르지 않고 먹습니다. 국수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에요. 저녁은 항상 국수를 먹습니다. 메밀국수도 좋고 밀국수도 좋고, 잔치국수, 비빔국수 가리지 않고 꼭 먹습니다. 먹고 싶은 건 꼭 먹는 편이에요. 국과수에서 일할 때도 부검을 마치고 내장탕을 먹으러 갈 정도로 비위가 좋았거든요, 하하. 그리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앉은 자세나 서 있는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노년이 되어서도 고생하지만, 업무에 대한 성과도 떨어지게 되지요.

많은 망자들을 부검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뇌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법의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을 선발할 때, 이리 저리 재는 친구들보다는 ‘왠지 법의학에 끌린다’는 친구를 선발합니다. 꾀를 내는 것보다 뇌가 시키는 대로 행하는 친구들이 우직하고 건강하거든요. 스트레스가 없으니까요.

 

퇴임 후에도 현역과 같은 열정은 존경스럽습니다.


후학들에게는 ‘정열을 갖고 자기 일에 미치라’고 조언하고, 정년에 가까운 후배들에게는 ‘이모작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한 학문을 마스터한 후 다른 분야를 접하면 그쪽에서는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의학은 실험을 하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죠. 정년퇴임을 하고 나니 실험할 대상이 없죠. 현재 ‘법의탐적학’을 하는 의사가 전 세계에 저 하나입니다. 이제 세계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해서 일정이 바빠질 것 같습니다, 하하.

인생 이모작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건강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항상 몸을 움직이라고 얘기합니다. 우리 뇌도 마찬가지지요. 자꾸 쓰지 않으면 점점 굳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뭔가 열정을 가지고 인생에서 가장 긴 시기인 노년을 보낼 무언가를 찾으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서재는 빼곡하다. 서재가 좁은 게 아니라 그가 40년 넘게 유럽 미술관 곳곳을 다니며 모아둔 도록(圖錄)만 해도 100권이 넘는 등 쉬지 않고 학문에 정진한 탓에 넓은 서재가 턱없이 좁아 보인 것이다. 꼿꼿하게 바른 자세로 책을 대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자니 남다른 체력관리 비법이 있을 법했다.

예술과 법의학을 접목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신문을 읽다보니 한 음악가의 사망원인이 신문마다 다르게 나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한 책을 수집해서 시체를 해부하는 식으로 책을 부검해 사인을 밝히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법의학 지식을 가지고 그림을 보면, ‘이 기막힌 걸 왜 아무도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돼요. 첫 대상으로 삼은 것이 러시아 음악가 차이콥스키였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그가 콜레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콜레라는 전염병임에도 불구하고, 기록에 의하면 차이콥스키는 격리되지도 않았고 면회도 자유로웠습니다. 그가 사망한 후에도 조문객들이 줄을 지어 그의 손이나 이마에 입맞춤했다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그는 권문세가의 조카와 동성애를 했다는 혐의로 사형 또는 명예롭게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자의든 타의든 비소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차이콥스키의 사인을 규명하면서 제가 시작한 일에 힘을 많이 얻었지요. 2009년부터는 ‘음악, 법의학자를 만나다’라는 시리즈의 음악콘서트를 통해, 차이콥스키(비소독살), 베토벤(알코올성간경변증), 슈베르트(매독) 등의 질병과 시인을 분석했습니다.

명화(名畵)에도 많은 법의학적 분석을 한 것으로 아는데요.


네. 2002년부터는 명화를 중심으로 화가의 삶에 대한 연구를 본격 시작했습니다. 30권이 넘는 책을 냈지요. 그림의 미학 뒤에 숨어 있는 사연과 내막을 파헤치는 일은 무척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고흐의 자살에 사용된 권총을 가져다 놓은 것이 과연 고갱이었을까? 모차르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정말 살리에르였을까? 베토벤의 사인은? 등 수많은 미스터리를 분석하는 작업이었죠.

개인적으로 고흐를 가장 좋아합니다. 고흐는 압생트라는 독주에 중독되면 노란색이 잘 보인다는 걸 알고는 이술에 빠져 지냈습니다. 당시 수많은 예술가들이 압생트를 즐겼죠.

책만 가지고 사인을 밝힌다는 것이 가능한지요.


유명한 예술가의 경우 진료기록도 많이 남아 있고, 또 전기작가들이 기록을 많이 남겨놨습니다. 당시 사인을 제대로 못 밝혔더라도 문헌적인 증거는 존재합니다. 지금도 외국에 나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사전 준비를 해서 현지 박물관과 화랑까지 들러 자료를 꼼꼼하게 수집합니다.

끝으로 <헬스조선> 독자들에게 건강비결에 대해 조언해주세요.


저는 아침마다 요가를 합니다. 유학 시절 같이 방을 썼던 인도인 교수가 아침마다 요가를 하면서 저를 요가의 세계로 이끌었어요. 피로가 금세 풀리고, 집중도 잘 되어 아주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헬스클럽에 가서 걷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움직여야 합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몸은 자꾸 굳을 수밖에 없지요.

특히 걸을 때 요즘 사람들은 다리만 가지고 걸으려고 해서 문제입니다. 우리 인체는 골반을 중심으로 상체와 하체가 연결되어 있어요. 가능한 한 골반을 살짝살짝 흔들면서 걷는 것이 좋습니다. 골반이 굳으면 상체와 하체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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