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이 사라지도록 뭔가 해보려고요"

심혜리 기자 2016. 4. 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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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생존 학생들·희생자들의 형제자매 목소리 담아
ㆍ세월호 육성 기록집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출간

“그 배 이름. 저는 피할 때까지 피하고 싶어요. 페북에도 자주 뜨는데 최대한 안 보려고 계속 넘기고. 말할 때도 ‘그때’ ‘그 사건’이라고 해요.”(고마음)

5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출간회에 참석한 세월호 희생 학생의 형제자매 대표 남서현(왼쪽에서 세번째), 박보나(여섯번째)씨와 ‘4·16 작가기록단’ 작가들이 책을 품에 안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애들이랑 같이 생활할 때는 생각이 잘 안 났는데 돌아와서는 계속 악몽 꾸고. (…) 계속 생각이 나요. 내가 어물쩍거리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여서 같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 때문에 죄책감이 와요. (죄책감이 좀 사라지도록) 이제는 혼자서 해보려고요. 시간이 좀 걸리겠죠. 제 몫이 있는 것 같아요.”(반세윤)

4·16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학생들과 어린 나이에 유족이 돼버린 형제자매들의 육성기록을 담은 <다시 봄이 올 거예요>(창비)가 출간됐다. 르포작가 강곤씨 등 12명의 ‘4·16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이 이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냈다. 책에서 생존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극도의 공포와 상실감, 죄책감과 사투하며 삶에 대한 애착이 느슨해져버린 것을 호소했다.

김수연은 “달라진 거는 무기력해진 거”라며 “뭘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무료하게 생활하고. 화를 내기도 싫고 감정을 느끼기 싫다고 해야 하나, 그냥 아무 감정이 없는 상태가 편했다”고 말했다.

고마음은 “솔직히 사는 거에 대해 미련이 없다. 당장 죽고 싶다는 건 아닌데 언제 죽어도 별로 예전보다 싫다는 게 덜하다는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주변의 위로나 격려조차도 극심한 스트레스로 받아들였다. 반세윤은 한 자원봉사자가 자신의 손을 잡으며 ‘아이고 어떡해. 앞으로는 힘내고 살아야 해’라고 말했을 때 “좋은 말씀이긴 한데 그게 너무 듣기 싫었다”고 말했다. 버스에서 자신의 명찰을 보고 “그 배를 탔겠네?”라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한 아저씨에게 묵묵히 대답을 해주고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집에 오는 내내 울었다고도 했다.

희생 학생들의 형제자매들은 부모의 눈치를 살피며 사고 이후 갑자기 어른이 돼버렸다. 동생을 잃은 최윤아는 “사고 직후 스트레스가 되는 일들을 다 쳐내야 했다”며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가장 먼저 정리하고, 회사도 그만둬야 했다. 쌍둥이 동생을 잃은 유하은은 “엄마가 울 때 그냥 가만히, 방에 있는다. 엄마 아빠를 보면 어쩌다 이렇게 됐지… 싶다”고 말했다.

생존 학생들이나 희생 학생들의 형제자매들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창비는 이날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출간 간담회를 마련했다.

형제자매 대표로 참석한 남서현·박보나씨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도 변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마음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남씨는 “일이 여기까지 이렇게 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당사자로서의 이야기를 넘어, 세월호 세대 전부에게 같이 잘 살자는, 우리의 얘기를 꼭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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