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수도회, 26년째 정신질환자를 돕는 이유
"제가 성(聖)안드레아병원에 너무도 신세를 많이 지고, 고마워서요.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싶던 차에 제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새벽에 출발해서 왔어요."
지난 29일 경기 이천 성안드레아병원에서 만난 최모(67)씨는 충북 청주 인근의 집에서 새벽 6시에 나섰다고 했다. 올8월 단주(斷酒) 10주년이 된다는 그는 2006년 이 병원에 들어온 날과 나간 날을 지금도 정확히 꿰고 있다. 한때 하루 소주 5병까지 마시며 가족과도 멀어지게 만들었던 알코올중독을 끊을 수 있었던 고마움 때문이다. 그는 요즘도 매주 목요일 오후 알코올중독자 외래치료 모임에 '선배'로 참가한다.
이 병원 마당엔 '단주 20주년 기념비(紀念碑)'가 있고 곁엔 어린 나무가 있었다. 이 병원의 자랑이다. 1995년 10주 과정 금주 교육을 받은 이가 20년 동안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것을 기념해 지난해 11월에 비석을 세우고 나무를 심은 것. '단주 10주년 기념비'도 여러 개 있었는데 그 주변을 입원 환자들이 간호사와 함께 평화롭게 산책하고 있었다.
성안드레아병원은 천주교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1990년 9월 설립했다. 순교자를 현양하는 수도회가 왜 다른 병원도 아니고 정신병원을 세웠을까. 병원장 김선규 수사(修士)는 "박해받던 시절 순교자들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 요즘으로 치면 정신질환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지금 세상에서 냉대와 차별로 고통받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이 인격적으로 대접받는 병원을 세우기로 수도회가 결정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 부지는 수도회 자립을 위해 소를 키우던 경기도 이천 목장 땅을 내놓았다. 미국과 유럽의 정신병원을 견학하고 벤치마킹한 결과 정신병원이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쇠창살과 CCTV, 울타리가 없는 병원을 세웠다. 쇠창살 없는 정신병원은 국내 최초였다. 병원 이름은 김대건 성인의 세례명으로 했다. 그러나 병원 운영은 산 넘어 산이었다. 설립 후 10년간 수도원 땅을 팔아 겨우 운영비를 댔다.
그런 가운데도 지난 2011년엔 형편이 어려운 의료급여 환자들을 위한 신관을 새로 지었다. 300병상에 전문의·전공의 13명 등 직원 160명이다. CCTV가 없는 대신 직원들은 더 바쁘게 뛴다. 지금도 이 병원의 제1 모토는 '인권'이다. 지난 2006년에는 대한민국인권상을 받았다. 국내외에서 견학도 줄을 잇는다. 병원 복도 기둥에 붙은 스펀지는 이 병원이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주는 상징 같았다. 자꾸 기둥에 머리를 들이받는 환자가 있어서 스펀지를 붙였다는 것. "환자를 격리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게 환자에게 더 좋은 것 같아서"라는 게 김 수사의 설명이다. 이 병원은 4월 13일 총선거를 위해 거소자 투표소도 마련할 예정이다. 지난 2월엔 병원 이름에서 '신경정신'을 빼고 '성안드레아병원'으로 개명했다. 김 수사는 "환자 처우를 개선하느라 직원 처우는 좀 희생됐다"며 "이젠 수도회에 더 팔 땅도 없다"며 쑥스러워했다.
4월 4일은 '정신건강의 날'. 김 수사는 "우리 사회에 꼭 알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의료보험료를 부담하는 건강보험 환자와 형편이 어려운 의료급여 환자 사이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행법으로는 의료급여 환자는 치료비, 약값, 심지어 입원 밥값까지 차별이 있어서 제대로 치료하기가 어렵다는 것. 오히려 형편이 어려운 계층일수록 정신장애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가난과 정신장애의 악순환이 우려된다는 이야기다.
"정신장애를 가진 분들은 스스로는 힘이 없고, 가족들은 숨기려 하다 보니 편견과 무관심이 굳어집니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일생 동안 한 번 이상 정신장애를 겪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관심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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