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36만명 공짜 이발해줬죠
"번번이 미안해서 어쩌죠. 오늘도 이걸로 될까요?"
머리가 하얗게 센 70대 노인이 이발을 마치고 돈 대신 조그만 종잇조각 하나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무료 이발 초청권'이라는 글씨가 인쇄된 종이였다.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파인 이발사는 "언제든 또 오세요"라면서 웃으며 종이를 받아들었다.
'무료 이발권'은 민병학(75)씨가 서울 도봉동의 한 낡디낡은 건물에서 운영하는 '향토이발관'에서 발행한 것이다. 1993년 이 건물 지하로 옮겨온 이래 한 번도 그 자리를 뜨지 않은 이발소다. 민씨는 독거 노인과 장애인, 불우 이웃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하지정맥류 수술을 하기 전까진 매주 수요일마다 지역 사회복지시설과 노인정을 찾아다니며 이발 봉사를 했다.
민씨는 지금은 세종시로 편입된 충남 연기군의 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래로 동생 4명이 있었다. 동생들을 먹여 살리느라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고모부가 하는 작은 약국에서 심부름하며 돈을 벌었다. 민씨는 "10대 땐 장돌뱅이부터 나무꾼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며 "당시 돈이 너무 궁해 나중에 돈을 벌면 베풀며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민씨는 50년 전인 1966년 지금 이발소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4평짜리 쪽방에 이발소를 열었다. 이발 기술은 친구가 일하는 이발소에서 면도 일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웠다. 당시 이발비는 50원이었다. 민씨는 "50원이 없어 머리를 덥수룩하게 하고 다니는 사람이 흔했던 시절이었다"며 "가진 건 없어도 행색만은 초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무료 이발권을 나눠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금 향토이발관의 이발비는 5000원이다. 노인과 학생은 3000원만 받는다. 원래 이발소 자리가 재개발돼 1993년 지금 자리로 옮기면서 가격을 올린 이후 23년째 그대로다. 민씨는 "왜 혼자만 가격을 안 올리느냐는 주변 이발소 항의도 많이 받았지만 없이 사는 사람들은 어떡하나 싶어 못 올렸다"고 했다.
민씨는 이발소를 연 이후 한 달에 600명 정도의 머리를 공짜로 손질해줬다고 한다. 지금껏 어림잡아 36만명은 무료로 이발을 해준 셈이 된다. 민씨는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이발소 문을 연다. 수십 년 '공짜 손님'들이 주로 다른 손님이 없는 이른 아침에 이발소를 찾기 때문이다. '우리를 멋진 신사로 이발시켜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1996년 4월.' 이발소 한쪽 구석 작은 찬장엔 '무료 이발권'과 함께 손님들이 내민 편지들이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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