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찾아 배낭 메고 유럽에

박돈규 기자 2016. 3. 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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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국 15명 만나고 온 이학도씨 "그들의 노고와 헌신 깨달아"

백석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이학도(24)씨는 유럽 배낭여행을 하며 5개국 6·25 참전용사 15명을 만났다.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98일간 포르투갈·프랑스·네덜란드·그리스 등 11개국을 돌았다. 이씨는 "지금 내 나이에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에서 목숨 걸고 싸운다는 건 벅찬 결정"이라며 "참전용사들을 찾아 뵙고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도포병여단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하고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때였어요. 여행 주제가 없으면 금방 지치고 지루해질 것 같았습니다. 마침 6·25전쟁 65주년이라 '6·25 참전용사 찾아뵙기'라는 프로젝트로 정했어요."

하지만 막막했다. 연락처는커녕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장문의 편지를 남겼더니 연락이 왔다. 이씨는 "주소와 이메일, 연락처를 구했지만 확인해보니 돌아가신 분이 많고 갱신이 안 돼 있는 자료였다"며 "유럽 각국의 한국전쟁 참전용사회에 수소문하고 비행기를 탔다"고 했다. 그리스와 터키를 제외한 참전국 용사들은 현지에 도착해 대사관과 한인회의 도움을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네덜란드였다. 80대 노인이 된 크라머씨를 비롯해 6·25 참전용사 3명을 만난 자리에서 다른 참전용사 윌렘 딜그씨의 부고(訃告)를 접했다. "미스터 리, 친구 장례식장에 가는데 한국인인 자네가 참석해준다면 마지막 가는 길이 뜻깊을 것 같네." 그는 주저없이 따라나섰다. "다리가 없는 분, 거동조차 힘든 분도 있었는데 장례식 내내 서서 전우의 마지막을 배웅했습니다. 고인이 좋아하던 노래에 이어 참전용사 대표가 편지를 낭독하자 식장이 울음바다가 됐어요. 네덜란드어를 모르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을 쿵쿵 치는 것 같았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자크 그리졸렛씨를 포함해 참전용사 4명과 미망인 1명을 만났다. 이씨는 "전쟁의 아픈 기억을 들쑤실까 봐 걱정했는데 참전용사들은 옆집 할아버지처럼 환하게 나를 반겨줬다"면서 "감사 인사를 하자 되레 '우리를 기억해줘 고맙다'고 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참전용사 후원단체를 만드는 게 꿈이다. 6·25에는 전투지원국과 의료지원국으로 모두 21개국이 참전했다. 이씨는 "젊은이들이 취업으로 바쁘게 살고 있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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