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만난 사람] 스페인 내전 때도 이익 95% 재투자..내 꿈은 '초록 와인'

구희령 2016. 3. 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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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도 찾는 400년 와이너리대 이어 경영하는 토레스 회장
지난 4일 서울 삼성동 파크하얏트서울에서 미겔 토레스 회장이 스페인 와인을 세계 정상급으로 올려놓은 ‘마스 라 플라나’ 와인을 들어보이고 있다. 토레스 와이너리는 세계 160여개국에 와인을 공급한다. [사진 김현동 기자]

스페인 기업 A의 소개 영상은 태양광 패널이 들어선 본사와 최첨단 연구소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A는 매년 수익의 95%를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하고 이 중 11%는 친환경 전략에 고정 투입한다. 세계 최초로 해당 분야 공정 무역(개발도상국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 인증을 받은 것을 비롯해 ‘세계 최초’ ‘스페인 최초’ 타이틀만 십여 개가 넘는다. 이 분야에서 스페인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17세기부터 가업을 이어온 스페인 기업 B의 소개 영상엔 선조들의 초상화를 담았다. B는 1870년 지금의 법인을 설립한 후 외부의 간섭을 철저히 차단하고 이름(미겔)까지 아들들이 대물림하며 5대째 경영하고 있다. 창립 기념일에 스페인 국왕까지 행사에 참석하고 어린 아이들도 이 회사 이름은 알 정도로 전통의 국민 기업이다.

각각 스페인의 혁신과 전통을 대표하는 다른 기업처럼 보이지만, 실은 A와 B는 ‘스페인 최고의 와이너리(와인 생산업체)’로 꼽히는 토레스의 이질적인 양면을 묘사한 것이다.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구현하고 있는 미겔 토레스(75) 회장을 4일 서울 삼성동 파크하얏트서울 호텔에서 단독 인터뷰했다. 법인 설립 후 4대손인 그는 1963년부터 토레스 와이너리의 ‘와인 혁신’을 이끌고 있는 장본인이다. 그는 대표 와인인 ‘마스 라 플라나’의 40번째 빈티지(2010년산)를 소개하기 위해 방한했다.
미겔 토레스(75)=세계적인 스페인 와인기업인 ‘토레스 와이너리’ 회장. ‘스페인 와인 왕’으로 불린다. 화학·양조학·포도재배·경영학 등을 전공했고 1960년대 스페인에 최첨단 와인제조법을 도입했다. 79년 프랑스에서 열린 와인올림픽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보르도 1등급 와인들을 제치고 ‘마스 라 플라나’ 와인으로 우승해 스페인 와인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으로 평가받는다. 와인전문지 디캔터 선정 ‘올해의 인물’(2002년)에 스페인 최초로 뽑혔다.

Q : 매년 이익의 95%를 R&D 비용으로 쓰는데.
A : “아버지 때부터 변함없는 원칙이다. 매년 수익에 따라 액수가 달라지지만 평균적으로 2000만 유로(약 270억원) 정도다. 스페인 내전으로 시설 일부가 불타고 할머니의 보석을 팔아 자금을 대야했던 1930년대에도 아버지는 ‘95% 재투자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Q : 수백 년의 전통을 가진 와이너리 가문이 R&D에 엄청난 비중을 두는 것이 낯설다.
A : “단기적 이익은 보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성장하려면 제품의 질을 높이는 R&D 투자가 필수다. 외부 자본을 철저히 배제한 가족 경영 기업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투자자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고 20년 뒤를 목표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급성장은 아니지만 매년 5%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Q : R&D는 어떤 식으로 하나.
A : “예를 들어 올해 생산한 와인을 100개의 저장통에 나눠 조건을 달리 해 숙성시켜 맛을 비교·분석한다. 와인 숙성통도 5~7개 업체 제품을 선정해 일년 뒤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고른다. 예전엔 러시아·헝가리산 나무로 만든 숙성통을 프랑스산이라고 납품업자들이 속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과학적인 성분 분석을 통해 이를 원천 봉쇄한다. 옛 포도 품종 복원, 이산화탄소 감축 방안 등도 연구한다.”
토레스 회장은 “나는 물론이고 내 아들·딸도 모두 대학에서 양조학과 포도 재배 등을 전공한 와인전문가(이놀로지스트·oenologist)”라며 “ 와이너리 경영엔 와인제조의 기술적인 부분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미겔 토레스의 와인 고르는 법

①모임 성격에 맞춰라=20대끼리 모이는 가벼운 행사에 10만원대 고급 와인을 마실 필요는 없다. 2만원대로 충분하다.

②음식에 맞춰라=재료 뿐 아니라 소스까지 고려해라. 단 ‘육류=레드 와인’ 식의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마라. 닭고기와 화이트 와인, 생선과 레드 와인도 멋진 조합이 된다.

③날씨에 맞춰라=계절에 따라 와인을 골라보라. 여름에 ‘아트리움’(4만원대)을 냉장고에 시원하게 넣었다가 먹는 식이다.

④실험을 즐겨라=가장 중요한 건 내 방식대로 다양하게 와인을 마셔보는 ‘실험’을 계속하는 것이다. 일단 즐겨라!

Q : 혁신 자체가 가문의 전통인 셈인가.
A : “그렇다. 아버지는 30년대부터 해외 진출을 모색했다. 79년 세계 최초로 칠레에 해외 자본 와이너리를 열 때 공교롭게도 피노체트 정권 독재가 시작됐는데 ‘프랑코 독재도 견뎠다’며 밀어붙이셨다. 내 아들(42)은 온라인커뮤니티인 ‘토레스클럽’을 운영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소비자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혁신의 정점은 현 토레스 회장이다. 그는 스페인 최초로 세계적인 프랑스의 포도 품종 까베르네 소비뇽과 스테인리스스틸로 된 와인 저장통을 도입하는 등 60년대 스페인 와인 사업에 ‘신기술 혁명’을 이끌었다. 프랑스 와인에 정면으로 도전한 결과,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블라인드 테스트 방식으로 열린 ‘와인 올림픽’에서 ‘마스 라 플라나’ 와인으로 우승했다. 이때 프랑스의 세계적인 와인 샤토 라투르, 샤토 오브리옹 등을 제치면서 스페인 와인이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계기가 됐다. 이 와인의 검은 라벨에서 유래해 토레스 와이너리는 지금도 ‘스페인의 검은 전설’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검은 전설’을 이끈 그는 2008년부터 친환경·공정무역에 앞장서는 ‘초록 와인’의 선구자로 거듭났다.

Q : 와이너리가 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나.
A : “2007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만든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 40년 동안 지구 온난화로 섭씨 1도 정도 기온이 올랐다. 기온이 오르면 포도 수확 시기 자체가 바뀌게 된다. 와인 산업도 큰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1만2000㎡의 태양광 패널로 전력을 공급하고, 솎아낸 포도 가지를 연료로 써서 가스 사용을 90% 줄였다. 첨단 셀러는 지하에 설치해 온도 변화에 대비했다. 운송 때 이산화탄소가 덜 발생하도록 와인병 무게도 줄이고, 와이너리 안의 자동차는 하이브리드로 바꿨다. 나도 소형 하이브리드차(도요타 프리우스)를 탄다.”
그는 “지구 온난화를 늦출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다”며 “예전보다 해발 100m씩 높은 곳에 땅을 사고 있다. 너무 추워서 포도를 심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곳인데 수십 년 뒤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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