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말 많은 터지만 문화 융성하기 좋아"

신동흔 기자 입력 2016. 3.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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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판 풍수사' 김두규 우석대 교수 地勢 재해석한 '국운풍수' 출간 "아파트는 남향 아니어도 괜찮아.. 땅심 받으려면 저층이 더 나아요"

서울 광화문에서 김두규(56)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를 만나던 날, 거리에는 한복 차림 여고생들이 유난히 많았다. 덕분에 도포 차림으로 나타난 '풍수사' 김 교수의 모습도 낯설지 않았다.

바람(風)과 물(水)의 흐름을 읽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직접 찾아가 터를 확인하는 그는 옛날 같으면 '도사'로 불렸을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대학에서 가르치고 논문을 쓴다. 문화재청 전문위원을 맡고 신(新)행정수도 건설의 자문 활동을 하며 지낸다. 최근에는 조선일보 연재를 엮어 '국운풍수'를 출간했다.

자칫 고리타분하거나 미신처럼 비칠 수 있는 풍수는 그의 언어를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다. 이런 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신경 쓰는 묘지풍수에 대해 그는 "자손들이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허(虛)한 실존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미신이 아니라, 역사로부터 한 나라의 정체성이 나오듯이 개인 역시 조상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 간다는 것. 배산임수(背山臨水)는 실용적인 철학이다. "집터의 뒤가 높고 앞이 낮으면 물 빠짐이 좋고, 사방에서 감싸니 바람을 막을 수 있죠. 공사 기간이 짧아져 비용도 적게 들고요."

이 현대판 도사가 통일 전 서독 지역에 있던 뮌스터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독문학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의 풍수서에는 헤겔·후설·하이데거 같은 철학자가 자주 등장한다. 동독 농민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유학이 끝나기 전 동·서독 통일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자신의 학문적 대상이던 나라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 허탈함을 풍수 공부로 메웠다. 한국 있을 때부터 풍수 강좌를 들으러 다녔고, 고수(高手)들도 찾아가 배웠던 터였다. 독일 도서관에 처박혀 중세부터 이어져 온 서양 풍수의 흔적을 뒤졌다. 그는 "서양도 지리 환경이 사람의 인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는 풍수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며 "독일 서점엔 중국 풍수를 소개한 '펑수이(fengshui)' 코너까지 있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평소에 주말은 서울서 지내고 주중에는 학교 인근의 전북 순창 농가에 머무른다. 전공은 일찌감치 2000년에 풍수지리학으로 바꿨다. 그가 사는 집터는 최고의 명당(明堂)이 아닐까. "전에 살던 사람이 일곱 자녀를 낳아 무탈하게 대학까지 다 보냈다는 말을 듣고선, 바로 들어왔어요. 이미 검증된 터에 들어가는 게 좋아요." 그는 "주거 환경이 옛날과 다르기 때문에 풍수도 변해야 한다"면서 "요즘처럼 난방이 잘되는 아파트 환경에선 남향집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다만 "땅의 기운을 받으려면 저층(低層)에 사는 게 좋다"고 했다. 청와대 터에 대해서는 "안 좋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조선의 기틀을 만든 세종과 세조도 살지 않았느냐"면서 "화기(火氣) 강하고 말(言)이 많은 터지만 오히려 문화적으로 융성하기에는 좋다"고 했다.

그에게 풍수는 우리 문화에 깃든 무궁무진한 '콘텐츠'다. 김 교수는 "문화유산의 90%가 풍수 때문에 만들어진 건축물"이라며 "예를 들어 임진왜란 때 왜군이 서울에 들어왔던 길을 막기 위해 삼국지의 관우를 모셔놓은 동묘는 중국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풍수 콘텐츠"라고 했다. 그는 "풍수 공부를 통해 주변 환경을 읽어가는 재미를 알면 삶의 의미가 훨씬 풍성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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