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 환자, 돈보다 희망이 중요해"

이태동 기자 입력 2016. 3. 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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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 아이들 돕는 박봉진 대표, 失明과 싸우면서도 봉사 계속

'희귀병'은 갑자기 찾아왔다. 박봉진(41)씨는 2009년 11월 눈이 침침해 병원을 찾았다가 '망막색소변성증(RP)' 진단을 받았다. 시야가 조금씩 좁아지다가 끝내는 실명(失明)하는 병이었다. 밤눈이 어두워 야맹증인 줄만 알았던 증상이 치료법조차 없는 희귀성 질환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넷. 희귀·난치성 환자 후원 단체 대표로 일해온 지 7년 만이었다.

박씨가 앓는 병은 나이가 들수록 악화하는 퇴행성(退行性) 질환이다.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날이 조금만 흐리거나 어두우면 혼자선 외출이 불가능한 정도다. 그러나 박씨는 여전히 희귀병 아이들을 돕고 있다.

인연을 맺은 건 2002년이다. TV에서 선천성 면역 결핍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한 소녀 이야기를 보고 인터넷 카페에 10·20대 청년 수십명이 '소녀를 돕겠다'며 모였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 때부터 영아원, 농아원 등에 봉사를 다녔던 박씨도 그중 하나였다. 이 모임이 희귀병 어린이를 돕는 '여울돌'이란 이름의 봉사단체로 발전하자 박씨가 대표를 맡았다. 초창기에 박씨는 후원금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자신이 환자가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환자들에게 돈만 지원해줄 게 아니라 삶의 희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난해 8월 서울 한 대형병원에 입원한 A(14)양과 여울돌 회원들은 함께 샌드위치 60여개를 만들어 병동 친구들과 의료진에게 돌리기도 했다. A양은 장기 대부분이 괴사(壞死)하는 병에 걸려 10년 넘게 어떤 음식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박씨는 "자신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선물하는 과정에서 A양이 삶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지길 바랐다"고 했다.

박씨는 2006년엔 한 희귀병 어린이의 아버지와 전국 1500㎞를 걸으며 정부의 제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시민 3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보건복지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2년 뒤 정부는 처음으로 희귀 난치성 질환자에 대해서도 치료비의 90%를 지원하는 보험금 산정 특례 제도를 시행했다.

매년 2월 마지막 날은 세계 희귀 질환의 날이다. 박씨는 "국내 희귀병 환자 수십만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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