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잃었지만 더 다채로운 삶 보이더라

심현정 기자 2016. 2. 25.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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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25년 만에 시집 낸 김주호, 첫 시각장애인 태권도4단 취득도

1988년 스물다섯 살 청년은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앞 카페 노고단을 열었다. 낮에는 글을 썼고 저녁에는 커피를 팔고 장사가 끝나면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젊은 날의 즐거움은 한 달을 가지 못했다. 아토피 치료를 위해 10여년 상복해 온 스테로이드제 부작용으로 앞을 볼 수 없게 됐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를 안고 있는 시인 김주호(53)씨가 최근 첫 시집 '혜화동'을 냈다. 등단한 지 25년 만이다. 1990년 월간지 '시와 의식'을 통해 등단했는데 그해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김씨는 "눈이 멀고 나니 시를 쓰기 싫더라"고 했다. 그는 "내가 쓴 글을 내가 확인할 수가 없으니 모든 의욕이 사라지더라"고 말했다.

김씨는 펜은 내려놓고 컴퓨터를 배웠다. 1996년 삼성전자에서 운영하는 시각장애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에서다. 컴퓨터를 배우고 나니 온라인 세계에서만은 앞이 보이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PC통신에 눈을 떴어요. 하이텔·천리안에 개설된 커피 동호회에 가입해 밤새워 채팅하며 사람들을 사귀었죠." 지금의 아내를 만난 건 이 동호회에서다. "장모님이 결혼식에 오지 않으셨어요. 지금은 마음의 문을 열고 지내지만, 그때는 심하게 반대하셨죠. 직업도 변변치 않고, 앞도 못 보는 남자를 사위로 들이고 싶었겠어요? 결국 아내가 짐을 싸들고 집을 나왔어요."

그가 새 인생을 살게 된 건 아내의 공(功)이 컸다. 결혼한 직후부터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보행 교육과 점자 교육을 받아보자고 해서 서울 성북장애인복지관에 갔어요. 거기서 시를 쓰는 모임 '별 바라기'가 만들어졌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모임을 했는데, 그때마다 작품을 가져가야 했어요." 이 모임에서 김씨는 두 번의 동인지를 냈고, 2007년에는 정인욱 복지재단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에서 시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태권도도 배웠다. 이 역시 아내의 권유였다. 그리고 7년 만인 지난 2013년 말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태권도 공인 4단을 취득했다.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특정 동작을 반복해서 수련하고, 대련을 할 때는 소리를 통해 위치를 파악한다. 지금은 무술 주짓수와 이종 격투기를 배우고, 하모니카와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장애를 안게 됐지만, 오히려 더 다채로운 인생을 살게 됐어요. 가족도 생겼고요. 시 속에 이 모든 내용을 두루 담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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