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질하던 조폭, 시인되다..안동 서원호씨

피재윤 기자 입력 2016. 2. 23. 14:49 수정 2016. 2. 24.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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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 시인으로 정식 등단하는 서원호씨(49). 그는 한때 폭력조직원이었다./2016.2.23/뉴스1 © News1

(대구ㆍ경북=뉴스1) 피재윤 기자 = 한때 폭력조직의 행동대원으로 활동했던 40대가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한다.

경북 안동지역 토착 폭력조직인 '대명회'의 행동대원이었던 서원호씨(49) 얘기다.

서씨는 오는 3월 대한문인협회가 발간하는 계간지 '대한문학세계'의 시 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한다. 시인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철없던 시절, 영웅심에 사로잡혀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폭력조직에 가입했던 그는 학창시절에는 각종 백일장에서 입상하는 등 남다른 필력의 소유자였다.

그를 문학의 세계로 이끈 사람은 지난해 등단한 형사반장 출신의 권태인 시인이다.

두 사람은 20년 전 강력반 형사반장과 지명수배된 폭력조직원으로 처음 만났다.

조폭 사건으로 서씨를 두번이나 구속시킨 권 반장은 그와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형사와 범죄자의 신분을 넘어 형과 아우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던 2008년 다른 범죄에 연루된 서씨는 징역 6년형을 선고받은 후 2014년까지 청송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서씨는 "이 기간이 내 삶의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이렇게 살아서는 후회로 삶을 마감할 것 같다. 출소하면 인간답게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서씨는 "돌이켜 보면 참 많은 책을 읽었다. 평생 읽을 책보다 더 많이 읽은 것 같다"며 "세월이 흘러 출소를 하니까 49살이 됐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맨손으로 다시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암담했다"고 회상했다.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자격증 공부를 시작한 그는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비롯해 가스안전관리, 소방안전, 굴삭기 등 9개의 자격증을 따냈고, 인테리어 건축사무실을 창업했다.

어느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한 심경을 담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글이 권태인 시인의 눈에 띄었다.

권 반장은 방법을 몰라 글 쓰는 일을 남의 일로 여기고 있었던 서씨에게 '시를 써 보라'고 권했다.

길을 몰라 포기했던 일인데, 갑작스러운 제안에 서씨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권 반장에게 시를 배워가며 문학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3일 동안 굶어가면서 시를 쓰기도 했다.

글이 자리잡기 시작한 어느 날, 권 반장이 '시인으로 등단을 시도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서씨는 "그냥 글이 좋아서 쓰는 것 뿐"이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작품성이 높다는 권 반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고민 끝에 그는 시 5편을 골라 대한문인협회의 계간지 대한문학세계에 응모했는데,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자에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씨는 "수상작으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은 날 혼자 많이 울었다"며 "평생 꿈으로만 끝날 일이 현실이 되고 보니까 꿈만 같았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좋은 글을 쓰며, 공인으로서 다시는 범죄의 늪으로 빠지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고 권 반장에게 약속했다.

다음은 서원호씨가 교도소 복역 당시 쓴 시(詩)다.

푸른 소나무(靑松)

제한된 공간 속에
쌓여가고 버려지는 시간은
영혼 잃은 존재감으로
버티어 본다

살아도 산 것 아니고
무너져 밟힌 처절한 육신은
그저 빈 껍데기 허물 벗어
모으고 있다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시간 더디고
부여받은 공간과 세월에
조금씩 스며든다

다람쥐 쳇바퀴 돌고 돌아
응어리진 가슴에
여물어 간 딱딱한 고독
언제쯤 녹아 사라질 건지

길고 긴 세월 깊은 한숨
썩어 빠진 쇳가루 내음이
토악질 쏠리는 가슴 쓸어내리고
낡아진 책장 넘기고 넘긴다

ssana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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