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다리는 자랄 수 없지만.. 올림픽은 도전할 수 있죠

윤동빈 기자 2016. 2. 2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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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정식 리우올림픽 수영 마라톤 10km에.. 세진이의 꿈] - "다리 생기게 해달라" 빌던 소년 선천성 장애.. 의족 끼고 생활 수영장 가면 "병균 옮는다" 눈총.. 엄마가 바닥 청소하며 양해구해 - 非장애인과 6월 예선서 겨뤄야 국제대회 3번 출전, 모두 완주.. 출전권 따면 국내 장애인 중 처음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수영장. 상체에 근육이 단단하게 붙은 앳된 얼굴의 청년이 양팔을 휘저으며 힘차게 물살을 갈랐다. 일반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헤엄을 치는가 싶더니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영장 밖에서 지켜보던 초로(初老)의 사내가 "오른팔 더 올려!"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내 균형을 잡고 정면을 향해 전진한 청년은 50m 레인 열 번 왕복을 모두 끝내고 레인 끝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전까지 큰 소리로 다그치던 사내는 "오늘 좋았어!"라고 어깨를 토닥였다. '로봇 다리 수영선수' 김세진(19·서울시청 소속)군과 노민상(60) 전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김군은 오른쪽 무릎 아래와 왼쪽 발목 아래가 없다. '무형성(無形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평소엔 티타늄 의족(義足)을 끼고 생활한다. '로봇 다리'란 별명은 그래서 생겼다. 또 오른손은 엄지와 약지만 있는 탓에 몸의 양쪽 균형이 맞지 않는다. 노 감독이 훈련 내내 김군에게 "오른팔을 더 올리라"고 다그친 이유다.

김세진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도전에 나섰다. 장애인이 출전하는 패럴림픽이 아닌 정식 올림픽 수영 10㎞ 종목이 목표다. 이를 위해 김군은 오는 6월 국제수영연맹(FINA)이 포르투갈에서 여는 수영 10㎞ 대회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김군은 이 대회에서 9위 안에 들면 올림픽 출전권을 얻는다.

육상의 마라톤에 해당하는 수영 10㎞ 종목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다른 수영 종목과 달리 수영장이 아닌 강이나 바다, 호수에서 열린다. 파도나 조류에 맞서야 하는 만큼 다른 종목보다 난도(難度)가 높다. 김군은 10㎞ 종목 국제대회에 세 번 출전해 모두 완주했다. 2013년 9월엔 뉴욕 허드슨강에서 열린 10㎞ 대회에 출전해 1시간 50분 27초의 기록을 세웠다. 전체 280명 선수 중 21위, 18세 이하 선수 중에선 1위였다. 노 감독은 "10㎞ 수영 기록은 강이냐 바다냐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올림픽 출전을 장담하긴 어렵지만 세진이의 출전 의지가 워낙 강하다"고 했다.

김군은 2009년 영국 내셔널 주니어 장애인 수영 챔피언십에 개인 자격으로 참가해 금메달 세 개를 따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3년엔 16세의 나이로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에 최연소로 입학했다.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선 계영 4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김군은 "나는 장애인이기 전에 수영선수"라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낼 수 있다면 몸이 부서져도 괜찮다는 각오로 훈련하고 있다"고 했다.

김군은 생후 5개월 만에 대전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다. 당시 보육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양정숙(47)씨가 자기만 보면 방글방글 웃는 김군을 입양해 키웠다. 양씨는 두 다리가 완전치 않은 아들이 다른 비장애 아이들처럼 걷길 원했다. 그래서 김군에게 휠체어 대신 의족을 맞춰주고 4세 때부터 혹독한 '걸음마 훈련'을 시켰다.

김군은 9세 때 재활치료를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 김군은 "어릴 때 항상 '제발 다리가 생기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의족 없이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수영장은 최고의 놀이터였다"고 했다. 하지만 김군을 본 수영장 회원들이 "병균이 물에 옮으면 어떡할 거냐"며 눈총을 주는 통에 설움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양씨는 "아들이 강습을 받는 동안 매일같이 대걸레로 수영장 바닥을 청소하며 다른 회원들의 양해를 구했다"고 했다.

김군은 "수영을 좋아하는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어머니를 보고 더 독하게 수영을 배웠다"며 "비장애인 못지않은 기록을 내, 장애에 맞서 싸우라고 가르쳐주신 어머니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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