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글쓰는 의사'로 소문나 상까지 받으니 신기해요"

입력 2016. 1. 27. 19:06 수정 2016. 1. 27.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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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응급의학 전문의 남궁인씨

남궁인.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A href="mailto:bong@hani.co.kr">bong@hani.co.kr</A>

모든 죽음엔 저마다 사연이 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사람을 매일 매순간 맞닥뜨리고 살려내야 하는 그에게 그 죽음의 사연들은 끊임없이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지난 21일 서울 이태원에서 만난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33·사진)씨는 ‘글 쓰는 의사’로 소문나 있다. 대부분 죽음에 관한 글이다. 현재 충남 홍성의 소방본부에서 공중보건의로 복무하고 있는 그는 앞서 수련의 시절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경험한 죽음들을 글감으로 삼고 있다. 흔한 ‘의사의 글’은 전문 의학용어로 채워져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편견이 있지만, 긴박한 응급실에서 의사가 바라본 죽음과 삶에 관한 갖가지 빛깔의 이야기들은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홍성 소방본부 복무중인 공중보건의
수련의 시절 응급실 ‘죽음의 사연들’
2013년부터 ‘페북’에 공개해 입소문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에 선정
출판사 제안으로 올봄 첫 책도 출간
“죽음처럼 알 순 없지만 글쓰기 계속”

“신기해요.” 고교 때부터 문학회에서 활동하며 습관적으로 글을 써왔다는 남궁씨는 지난해 부쩍 자신의 글이 널리 알려진 것에 대해서 얼떨떨하다고 했다. ‘직업적 글쓰기’도 아닌 그의 글이 퍼지는 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큰 몫을 했다.

혼자 습작만 하던 그는 2013년부터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처음엔 친구들과 지인만 보던 글이 ‘좋아요’와 ‘공유’를 타고 점점 넓게 퍼졌다. 좋은 글은 사람들이 알아봤다. 지난해엔 인터넷 매체 <ㅍㅍㅅㅅ>와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에도 글이 게재되면서 더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친구가 5천명을 넘어 더는 받을 수도 없게 됐고, 올린 글마다 수백건의 ‘좋아요’가 올라가는 ‘페북 스타’가 됐다.

활자가 인기 없는 시대에 사람들이 그의 글에 반응하는 이유에 대해 “의사지만 문필가로서 효과적인 시선 처리나 장면 전환 등을 고민하면서 글을 썼다. 그런 부분이 사람들 마음에 와닿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머쓱해하며 분석했다. “평생 책 한 권 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기대보다 빨리 이루게 됐다. 지난여름 페북에 올린 글을 유심히 본 출판사 편집자가 출간을 제안해 왔다. 올봄 문학동네에서 그의 첫 책이 나온다.

그가 주력하는 글의 장르는 ‘팩션’이다. 자신이 응급실에서 겪은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기록하기보다는 극적인 장치도 더하고 구성도 새롭게 짠다. 환자나 가족들의 구체적인 신상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뜻도 있다.

그는 ‘좋아요’를 넘어 공식적인 ‘상’도 연이어 받게 됐다. 지난해 12월 ‘보령의사수필문학상’ 금상에 이어 지난 7일 이전에 썼던 글을 손봐서 투고한 ‘한미수필문학상’ 공모에서 대상에 선정된 것이다. 대상 수상작 제목 역시 ‘죽음에 관하여’. ‘죽음이 멀지 않은 말기암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 만에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 그는 결국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교통사고를 낸다. 사고로 앞차의 중년 여성 운전자는 응급실에 실려가지만 결국 사망한다. 사고를 낸 가해자를 비난해야 하는가? 환자를 돌려보낸 의사인 나의 탓인가?’ 중간에서 두 환자를 모두 겪은 의사는 ‘생명과 우연’에 대해 성찰하며 죽음에 관하여 “앞으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글을 맺는다. 정호승 시인을 비롯한 심사위원회는 “이야기를 진행하는 능력이 안정돼 있고 설득력 있는 문장이 돋보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그의 글감 가운데 ‘자살’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한 갈래였다. 지난해 12월 그는 “목을 매면 인간은 죽는다. 이것은 가장 성공률이 높은 자살 방법이다. 목이 매어진 인간은, 기적이 오지 않는 이상 조용히 죽는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목을 맨 인간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첫 문단에 의학적 사실에 기반해 건조한 문장으로 써내려갔다. 누군가는 페북 댓글에 ‘죽음의 방법을 너무 상세히 썼다’고도 지적했지만 그는 “부정확한 정보 대신 의사로서 정확하게 쓸 필요가 있다”고도 강변했다.

하지만 그가 꼽은 가장 반응이 좋았던 글은 재미삼아 쓴 ‘군대 간 의사들’ 얘기였다. 갓 전문의 자격증을 딴 수백명의 의사들이 공중보건의로 복무하기 전 훈련을 받기 위해 모인 논산훈련소에서는 환자가 나오더라도 이들보다 수련을 덜 받은 일반의 군의관이 진료를 해야 한다. 진료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군의관들이 직접 진료를 보는 대신 아픈 전문의들끼리 서로 진찰하도록 하는 풍경을 재밌게 그려낸 글이다. 지난해 5월에 올린 이 글은 ‘오늘의 유머’나 ‘디시인사이드’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전히 ‘유머글’ 형태로 인터넷을 떠돈다.

“쓰면 쓸수록 글이 점점 나아지는 것을 보는 게 스스로 즐겁다”는 그는 앞으로 다른 소재의 글도 다양하게 쓰고, 본격 소설도 쓰고 싶다고 했다. 모바일 등 다른 플랫폼으로 독자들과 만날 기회도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내년 4월 공중보건의 복무를 마치는 그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선 “지난해 있었던 일들도 예측 못했듯 아직 모르겠지만, 무슨 일을 하든 글은 꼭 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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