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외로운 사람들 위로하는 것"
고운 화장에 갈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 서울 삼청동 카페에 앉아 있었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에서 빠글빠글 파마머리 가발을 쓰고 '선우 엄마'를 연기한 김선영(40)이다.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낯선 모습이었지만 거침없고 유쾌한 수다는 선우 엄마랑 똑같았다.
여느 이웃집에 살고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이목구비, 들어도 잊기 쉬운 평범한 이름. 김선영은 그 소박함과 친근함을 무기로 '생활 연기'를 펼쳐 공감을 끌어냈다. "'응팔' 감독님이 tvN '꽃할배 수사대'에서 저를 보시고는 '왜 (연예인 아닌) 일반인이 드라마에 나왔지?' 생각하셨대요. '언제까지 나오는지 보자' 하고 지켜보시다가 '응팔' 캐스팅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20년 넘게 연극배우로 활동해온 그는 최근 들어 영화와 드라마 단역·조연으로 조금씩 영역을 넓혀왔다. "언젠가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를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현대판 전원일기'나 마찬가지인 '응팔'이 기적처럼 나에게 왔다"고 했다. 남편을 잃고 목욕탕 청소로 돈을 벌어 남매를 키우는 선우 엄마가 시어머니에게 설움 당하고 혼자 흐느껴 우는 장면이 숱한 시청자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한편으론 '택이 아빠'(최무성)와 속 깊은 중년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김선영은 "극에 완전히 몰입해 촬영장에서 언니들 얼굴만 봐도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언니들'이란 같은 골목에 살며 친자매처럼 지내는 역할로 나온 라미란과 이일화를 뜻한다. "특히 듬직한 아들 선우 역을 맡은 고경표와는 눈만 마주쳐도 서로 울음을 터뜨려서 가끔 눈물 연기가 잘 안 될 때 카메라 옆에 경표를 세워놓기도 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막판, 택이 아빠로부터 "날도 추운데 같이 살자"는 덤덤한 프러포즈를 받았을 땐 "정말 미친 듯이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김선영은 중학교 때 졸업 과제로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려본 이후 연극에 빠져들었다. 한림대 철학과에 들어가서도 오직 연극만 했다. 연출자인 남편을 만나 6년 전 첫딸을 낳고 산후 조리할 돈이 모자라 경북 영덕 시골집으로 잠시 내려갔다. 거기서 친정 부모님이 알람시계 맞춰가며 일일 연속극을 챙겨보는 모습을 봤다. "그때 처음으로 기도했죠. 드라마 찍어서 효도하게 해달라고. 아이를 낳고 나니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나 많이, 깊이 사랑했구나."
그는 이 말을 하다가 훌쩍거렸다. 눈물을 닦고 나서 "연기는 잘먹고 잘살고 잘 벌고 잘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아픈 이들의 마음을 만져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선영을 만나고 나니 알 것 같았다. '응팔'이 남녀노소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덥혀준 '국민 드라마'가 된 까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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