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만 치다가 누군가 도와보니 짜릿해요"

정경화 기자 2016. 1. 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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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로 '한뼘' 성장한 심성훈군] 캄보디아서 집지은 학교밖청소년 "더 어려운데 웃는 아이들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지난 12월 1일 오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심성훈(16)군이 능숙한 자세로 삽질을 시작했다. 집을 지을 땅을 평평하게 고르기 위해서였다. 기초를 다진 뒤에는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발랐다. 지켜보던 캄보디아인 일꾼들이 "전문가 솜씨"라며 놀랐다. 벽돌 모서리에 찧어 눈가가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데도 성훈군은 씩 웃어 보일 뿐 벽돌 쌓기를 멈추지 않았다. "제가 쉬면 다른 친구들이 제 몫까지 해야 하는데 미안하잖아요."

성훈군은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어린 시절엔 큰 빚을 진 부모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녔고 두 분은 곧 이혼했다. 미용사인 엄마가 재혼해 같이 살았던 새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다. 술에 취하면 초등학생인 성훈군을 때리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집에 가기 무서워 놀이터에서 밤을 새우는 경우가 잦아졌고, 그때부터 가출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중학생이 된 성훈군은 자주 결석했고 친구를 때리고 돈을 뺏었다. 중퇴 후 복학했지만 후배들과 같은 반에 있는 게 창피해 또다시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캄보디아에서 보여준 능숙한 삽질은 건설 현장에서 '노가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깨너머로 익힌 솜씨였다. 성훈군은 "세상에 나보다 힘든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성훈군은 올해 초 여성가족부 산하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 '꿈드림'을 찾아갔다. "아르바이트도 관두고 집에서 게임만 하다가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꿈드림 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비슷한 친구들을 사귀며 적응하고 있을 때, 캄보디아 봉사활동 참가자를 모집하는 포스터가 붙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이 떠올랐다. "외국에는 밥도 굶고 아파도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아이가 많아. 밥에 김치만 얹어 먹어도 행복한 거야."

그렇게 생애 첫 해외여행, 첫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온 성훈군을 지난 28일 만났다. "캄보디아에서 엄마 말대로 저보다 훨씬 어렵게 사는 아이들을 만났다"며 "집도 없고 밥도 못 먹는데 매일 활짝 웃고 저희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캄보디아에서는 '내가 남을 돕고 있다'는 생각에 고되지만 기분이 좋았다"며 "어려운 일이 닥쳐도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배웠다"고 그는 말했다.

이번 캄보디아 집 짓기 봉사활동에는 성훈군 같은 '학교 밖 청소년' 20명이 함께 다녀왔다. 여성가족부와 하나금융나눔재단이 후원하고 한국해비타트가 주관했다. 이들의 출발 전 목표는 일주일 동안 집 한 채를 짓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채를 완성하고 돌아왔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처음에는 낯설어서인지 소극적이던 아이들이 어느새 삽질과 벽돌 나르기 '달인'처럼 날래게 변했다"며 "자신감과 책임감을 얻고 우리나라보다 어려운 환경을 체험하면서 훌쩍 성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집을 짓고 온 성훈군에게는 새해 목표가 생겼다.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미용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다. "미용사가 되면 엄마랑 같이 살면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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