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앞두고도 일하려는 이유 딱 하나, 기부

김정환 기자 2015. 12. 2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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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2015, 희망 릴레이] [1]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68세 경비원 김방락씨 "삭막한 세상의 등불 되고싶어 12년간 월급 모아 1억 기부, 청와대서 대통령도 만나 특전사로 베트남전 참전.. '안되면 되게 하라' 정신으로 내년 새 일자리 구할겁니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성대학교 경비원 김방락(68)씨는 올 연말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다. 김씨가 일하는 경비업체와 한성대의 용역계약이 올해로 끝나면서 12년 동안 일해온 이 대학 경비원 생활을 접게 됐기 때문이다. 교정 순찰 중에 만난 김씨는 "아직도 체력 하나는 자신이 있어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며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특전사 정신으로 반드시 새 직장을 구할 것"이라고 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김씨가 구직 의지를 불태우는 건 기부를 위해서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외국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써달라"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했다. 2004년부터 한성대 경비원으로 일하며 받은 월급을 꼬박꼬박 모은 돈이었다. 비정규직 경비원이 공동모금회에 1억원 이상을 기부한 사람의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1억원 중 1000만원은 한성대에 다니는 저소득층 학생 5명에게 200만원씩 지원했다.

기부 소식이 곳곳에 알려지면서 올 들어 김씨가 근무하는 곳을 찾아와 음료수나 먹을 것을 챙겨주는 이들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졌다. 낙엽을 쓸거나 학교 순찰을 할 때 그를 알아보고 꾸벅 인사를 하는 학생도 생겨났다. 지난 8월엔 대통령이 참석한 청와대 행사에도 다녀왔다. 그는 "비록 정든 학교를 떠나게 됐지만 기부 문화 확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니 2015년은 나에게 명예로운 한 해"라고 했다.

전북 정읍에서 9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김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집에서 농사일을 돕다 21세가 된 1968년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입대 후에는 '검은 베레모'의 특전사 하사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969년 말에는 1년간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1974년 중사로 전역했지만 1979년 군무원으로 재취업해 25년을 근무하고 퇴직했다.

전역 후 군무원으로 재취업할 때까지 5년간도 힘들었다. 막노동을 하거나 손수레를 끌며 번데기 장사를 했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의 단칸방에서 겨울에 보일러도 거의 틀지 않고 아꼈다고 한다. 김씨는 6년 전에야 34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장만했다.

그런 김씨였던 만큼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동사무소에서 연말 어려운 이웃에게 줄 쌀과 라면을 살 돈을 모을 때면 십시일반으로 성의를 보탰다.

2004년 군무원에서 은퇴한 김씨는 '이제 제대로 남을 도와보자'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해 7월 한성대 경비원으로 들어간 그는 첫 월급 70여만원을 통장에 넣은 것을 시작으로 12년간 월급을 쓰지 않고 모았다. 가족들에게는 "매달 공무원연금 200만원이 나오니, 우리는 그 돈으로 살면 된다고 설득했다"고 했다.

그렇게 11년을 일해 지난해 10월까지 모인 돈이 9000만원이었다. 그런데 한 달 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들과 말다툼을 벌이다 분신을 해 결국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김씨는 이 소식을 접하고서 '지금이 모은 돈을 기부할 때'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김씨는 "우리 같은 경비원도 삭막한 세상에 등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공동모금회를 찾아 그간 모은 돈 9000만원을 기부했다. 모자란 1000만원은 작년 12월부터 받은 경비원 월급을 다달이 기부해 올 8월에 '1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12년간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지켜봐온 김씨는 취업이 어려워서인지 해가 갈수록 학생들이 생기를 잃어간다고 했다. 인사를 건네도 목소리에 힘이 없는 학생이 많다고도 했다.

김씨는 "삶에 목표가 있으면 직업의 귀천은 중요하지 않다"며 "젊은 학생들이 목표를 갖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생각으로 용기 있게 세상에 도전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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