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장의 '혹시나'가 사람 살렸다

신혜정 2015. 12. 24.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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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구급대도 “오인 신고” 철수

다시 현장 확인하며 자살 막아

자살자의 생명을 구한 김현수 경장. 강북경찰서 제공

“자살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문 좀 열어 보세요.”

21일 오전 10시15분 서울 강북구의 한 오피스텔. “여동생이 자살을 하려는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강북경찰서 수유3파출소의 김현수(27) 경장 등 3명과 119 구급대원 5명이 A(35)씨의 집 문을 두드렸다. 곧 이어 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 A씨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왔느냐”고 되물었다. 경찰이 “혹시 몸이 아픈 곳이 없냐”고 묻자 “전혀 그런 일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경장은 신고 내용을 밝히며 “혹시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냐”고 추궁했다. A씨는 “불면증이 있어 수면제를 먹는데 정량을 복용하고 있다. 언니가 오버를 한 것 같다”고 답했다. A씨의 차분한 대응에 경찰과 119 대원들은 ‘오인신고’로 판단해 별다른 확인 없이 철수를 결정했다.

하지만 김 경장은 다급했던 신고 목소리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는 현장을 완전히 떠나기 전 A씨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멀리 대전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언니는 “동생이 여전히 약을 먹고 자살하려 한다. 신경 안정제 3주치를 복용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 “동생이 문자로 ‘더 이상 죽는 것 방해하지 마라. 장기는 기증해 달라’는 유언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고 울먹였다.

“그게 확실하다면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A씨를 병원에 데려 가겠다”는 김 경장의 제안에 언니는 “무조건 동의한다”고 답했다. 김 경장은 앞서 철수한 119에도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했고 “신경 안정제를 먹어도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김 경장이 다시 A씨의 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때 문은 열려 있었고, A씨는 쓰러진 상태였다. 테이블 위에는 흰색 약봉지 10여 개가 뜯겨져 있었다. 김 경사는 A씨를 들쳐 업고 내려와 119 구급차를 불러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현재 A씨는 대전에서 급히 올라온 언니의 간호를 받으며 병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A씨의 언니는 23일 “덕분에 동생이 살았다”며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김 경장은 “다른 경찰이었어도 같은 판단을 했을 것”이라며 “4년 차에 불과한 초년병이지만 30년 차가 돼서도 현장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신혜정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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