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공통어 에스페란토 창시한 '자멘호프의 날'

최윤필 2015. 12. 15.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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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2월15일

1917년 12월 15일, 에스페란토어를 만든 자멘호프가 태어났다. 그는 만국 공통의 언어로 인본주의 세상을 앞당기고자 했다.

개인 또는 집단이 특정 기획과 문법에 따라 만든 언어를, 자연스럽게 생성된 언어(자연어)와 구분해 인공어라고 한다. 인공어는 창조 주체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집단의 은어나 유행어와 구분되고, 일상의 완결적 소통 수단으로 활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등 전문어나 톨킨 등의 작품에 등장하는 ‘엘프어’와도 다르다.

알려진 바, 최초의 인공어는 12세기 독일의 수도원장이던 힐데가르데 데 빙겐이 종교적 목적(신비주의)으로 만든 ‘링구아 이그노타’이다. 그는 23개의 알파벳으로 라틴어 문법에 따라 1,011개의 단어를 만들어 썼다고 한다. 그 같은 시도는 중세 이후로도 간헐적으로, 또 제한적으로 이뤄져 왔고, 주로 ‘우리끼리만 통하는’ 은밀한 결속감, 혹은 초월이나 완벽 등의 염원에 닿기 위한 기도의 한 형식으로 이용됐다. 라이프니츠 같은 철학자들이 자연어의 언어적 한계(중의성 등)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체계의 철학적 언어를 연구했다고는 하지만 다만 연구일 뿐이었다.

가장 널리 알려지고 실제로도 쓰이는 인공어로는 19세기 말 유대계 폴란드인(당시는 러시아제국) 루드비크 자멘호프(Ludwik Zamenhof, 1859~1917)가 창시한 ‘에스페란토’가 꼽힌다. 자멘호프는 집에서는 폴란드어를 썼고, 학교에서는 러시아어를 썼다.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영어는 학교에서 배웠고, 이디시어는 어머니로가 가르친 언어였다. 아버지는 프랑스어와 독일어 강사였다고 한다. 만국공통어에 대한 그의 열망은 저 혼동의 피로감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언어들이 지닌 조어적ㆍ문법적 유사성, 즉 국제어의 가능성을 그가 흘려버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에스페란토어의 시험판으로 그가 ‘링그베 우니베르살라(보편 언어)’라 부른 언어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가르친 것은 19살이던 1878년 무렵부터였다. 이후 그는 각 민족어 문학작품들을 번역하며 어휘와 문법을 보강, 1887년 7월 ‘제1서’라는 제목의 에스페란토어로 된 에스페란토어 교재를 ‘에스페란토 박사(Doktoro Esperanto)’라는 필명으로 출간했다. 에스페란토는 에스페란토어로 ‘희망하는(esperi) 사람(-anto)’이라는 뜻. 그가 희망한 것은 만국공통어 자체가 아니라 배우기 쉽고 민족 초월적인 언어를 통해 자유롭게 소통하는 세상, 범세계적인 인본주의 세상이었다.

1905년 프랑스에서 제1차 에스페란토 세계대회가 열렸고, 국제협회가 창립됐다. 62개 가맹국 협회와 120개국 개인 회원이 생겨났고, 지금도 매년 100여 건의 크고 작은 국제회의가 에스페란토어로 당연히 통역 없이 열리고 있다. 한국지부는 1987년 5월 창설됐다. 자멘호프가 태어난 12월 15일 오늘은 그들이 정한 ‘자멘호프의 날’이다. 그의 업적뿐 아니라 그의 염원을 환기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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