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健保도 못받는 시간강사.. 난 대학보다 햄버거집에 더 소속감 느꼈다

권순완 기자 2015. 12.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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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 열악한 처지 알린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펴낸 김민섭씨 알바했던 패스트푸드점 健保 혜택.. 퇴직 후에도 2년까지 건강보험료 내줘 점주는 첫 아이 돌잔치 축의금까지 줘 대학에선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는데.. 시간강사, 최저 시급조차 보장안되더라 오전 8시30분~오후 5시 週5일 조교 일.. 6개월간 350만원 받아.. 시급 3995원 교수 연구실 정리하다 다쳤는데도 병원비조차 모두 자비로 부담해 캠퍼스 떠나련다 격려해줄 줄 알았던 대학원 선배들 '왜 학교가 비리 온상인 것처럼 썼냐' 비난하고 윽박질러 힘이 쭉 빠졌죠.. 이젠 논문대신 자유롭게 소설 쓸것

9일 오전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하 지방시)의 저자 김민섭(32)씨는 수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씨는 인터뷰 시각을 30분 늦춘 것에 대해 사과했다. "미리 말해줬으니 괜찮다"고 해도 계속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정해진 시간표대로 일하는 사람 특유의 표정이었다.

김씨는 지방에 있는 한 4년제 대학 시간강사다. 2012년 그 대학에서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3년 동안 학부 글쓰기 강의를 맡아왔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자신이 시간강사 겸 대학원생으로 겪었던 고충을 '309동 1201호'라는 필명으로 연재했다. 총 조회 수가 200만 회를 넘겼다.

이 글을 모아 책 '지방시'를 지난달 출간했다. 한 달 만에 4000부 가까이 팔렸다. 이 책 역시 필명으로 썼다. 김씨는 "실명으로 쓰게 되면 대학 내 강의나 연구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 같았다"며 "더 이상 대학에서 강의하지 않게 될 것 같아" 실명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다.

주5일 근무에 월 60만원도 못받아

김씨는 '지방시'에 대해 "남이 잘못한 것을 고발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부족한 것을 돌아보기 위해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학계에서 연구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감내해야 하는 불합리는 다양하다. 우선 최저 시급을 보장받지 못한다. 김씨는 박사과정(2010~2012년) 동안 방학 포함 한 학기(6개월) 동안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주 5일 조교로 일하고 약 350만원을 받았다. 월 58만3000원가량이다. 대학원 수업 시간을 빼고 계산해도 시급은 3995원(2010년 법정 최저시급 4110원)밖에 안 됐다. 2013년부터 시간강사로 일하며 받은 강의료는 연 10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학술회의가 열리면 새벽까지 이어지는 회식에 '강제 동원'됐고, 교수 연구실을 정리하다가 책에 찍혀 다리를 열 바늘 꿰맸을 때도 병원비는 스스로 부담했다. 교수 임용을 준비하던 그의 선배 한 명은 "대학에 환멸을 느낀다"는 말을 남기고 강단을 떠나기도 했다.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후배에게 똑같은 부담을 지우는 내 모습을 그대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대학이 시간강사의 건강보험조차 보장하지 않는 데서 큰 소외감을 느꼈다. 현행 법령상 시간강사가 대학에서 건강보험을 보장받으려면 주당 15시간 이상을 근무해야 한다.

김씨는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은 주당 3~4시간의 강의를 맡기도 어렵다"며 "나 역시 지금까지 3년째 시간강사를 해왔지만 한 번도 학교에서 내 건강보험료를 내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작년 초 결혼했지만 월 15만원가량의 건강보험료를 부담할 엄두가 나지 않아 혼인 신고를 늦추기도 했다.

"패스트푸드점 알바보다 못한 시간강사"

건강보험을 제공해 준 곳은 따로 있었다. 김씨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한 패스트푸드 체인점이었다. 그는 "작년 아내가 첫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무작정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다행히 건강보험이 제공됐다"고 말했다. 부모님에게는 차마 사실대로 말 못하고 "지도교수가 연구원으로 등록해 줘 건강보험료가 나오게 됐다"고 했다.

보통 대학에서 일주일에 이틀 강의를 했던 김씨는 직장 건강보험의 가입 조건인 '월 60시간 근무'를 채우려고 패스트푸드점에 주 4일 출근했다. 음식 재료 상하차와 매장 정리 등 일은 고됐지만 "대학보다 그 햄버거 집에서 오히려 소속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패스트푸드점 점주는 아이 돌잔치 축의금으로 10만원을 주기도 했다. 대학에선 받아보지 못한 '성의'였다.

시간강사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해도 한 달 수입은 150만원 남짓이었다. 공부에 필요한 책값과 교통비를 빼면 세 식구가 살기 힘든 금액이었다. 닥치는 대로 다른 용돈 벌이를 찾아다녔다. 사립 연구 단체에서 2시간짜리 인터뷰 녹취를 풀어 A4용지 60~70장에 써 넣는 일도 했고 우체국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했다. 김씨는 "편의점에서 야간 근무를 하고 있는데 그날 낮 교무처에서 수업 문제를 상의했던 교직원이 물건을 사러 들어온 적이 있었다"며 "그 직원이 나를 알아보는 눈치면서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아 민망했다"고 말했다. 생활비는 먹는 데서 우선 아꼈다. 학생식당의 밥 한끼(2000원)가 교직원식당보다 3000원 싸 학생들 사이에서 배를 채웠다.

대학 동료들 공격에 학교 떠나기로

책이 나온 지 2주쯤 지났을 무렵 그는 대학원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집 앞으로 나가니 선배 다섯 명이 와 있었다. "(책을) 네가 쓴 것이 맞냐"는 물음에 김씨는 "그렇다"고 했다. 이미 몇몇 선배가 눈치를 챈 것 같아 솔직하게 말하면 조언과 격려를 받을 줄 알았다고 했다.

선배들은 그러나 "왜 우리를 모욕하고 우리 학교가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썼느냐"며 "학교가 감사를 받게 되면 어떡할 거냐"고 윽박질렀다. 한 선배는 "네 지도교수도 (네가 그 책을 썼다는 사실을) 다 안다. 그분도 참 박복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만약 학교 당국이나 교수가 내 책을 빌미로 나를 공격했다면 의연히 맞섰을 것"이라며 "그러나 동료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나오니 힘이 쭉 빠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 다음 날 연구실에서 짐을 뺐고 학과장에게 다음 학기부터 학교를 떠날 뜻을 밝혔다. 그는 아직 박사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상태다. 사실상 박사 취득의 꿈은 사라진 셈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김씨는 인문학자의 삶을 꿈꿨다. 학부 때는 전공 강의에서 자신의 연구 성과에 대해 행복한 표정으로 강의하는 교수에게 매료됐다. 그 교수를 지도교수로 삼아 대학원에 들어갔다. "좋아하는 근대문학을 업(業)으로 삼아 공부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김씨는 말했다. 그는 자신이 다시 학계로 돌아가 강단에 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그는 우선 "조용한 곳으로 이사를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거처를 옮기고 학술 논문이 아니라 좀 더 자유로운 글을 쓰는 데 전념할 예정이다. 고등학교 때 습작으로 썼던 소설을 다시 시작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패스트푸드점도 지난주에 그만뒀다. 1년 이상 근속해 퇴직 후에도 향후 2년간은 직장 가입자 수준의 건강보험료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책을 내면서 대학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오게 됐다"며 "대학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차가운 곳인지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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