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못일어서는 중증 장애인, 의대생으로 우뚝 서다

엄보운 기자 입력 2015. 12. 11. 03:05 수정 2015. 12. 11.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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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병 앓는 지체장애 1급 전병건군, 연세대 의대 첫 합격] - 선천성 난치병 몸 자라지만 근육 크지 않아.. 펜 드는 것도 힘겨워 - "내 병 연구해보고 싶어" 延大에 약식 논문까지 제출 전례없어 고심했던 학교측.. 만장일치로 "꿈 이뤄주자"

전병건(18·서울 동성고 3)군의 필기구는 모두 굵으면서도 가벼웠다. "펜이 무거우면 팔 근육이 쉽게 저려 공부를 오래 못 하고, 굵기가 가늘면 쥐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근육병(선천성 근무력증)'을 앓아왔다. 근육병은 체내에서 근육을 만들고 유지하는 단백질을 생성하지 못하는 희귀난치병이다. 전군은 중학교 때부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혼자 일어서지 못했고, 지금은 어깨 높이 위로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한다.

이런 전군이 올해 대학입시에서 연세대 '고른기회 특별전형'으로 의예과에 최종 합격했다. 학과가 개설된 이래 지체장애 1급 학생이 합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군은 대학에 제출한 자기소개서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까지 제가 갖고 있는 선천성 근무력증(근육병)에 대해 정확한 진단도 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의사가 돼 제 병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수많은 환자를 돕고 싶다"고 썼다.

전군의 학교 성적은 늘 전교 1·2등을 다퉜다. 불편한 몸을 집중력으로 극복했다. 전군은 "필기가 느리니까 요점만 적었고, 쓰면서 외우기가 어려우니까 한 번 들을 때 최대한 집중해서 외웠다"고 했다.

전군은 이번 입시에서 자기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한 약식 논문도 제출했다. 최신 연구들을 정리하고 지금 먹고 있는 약의 예후를 꼼꼼하게 적은 '자기 관찰 보고서'였다. 연세대 관계자는 "전군처럼 2번 염색체에 문제가 있어 발병한 근육병 연구 사례와 각 상황에 맞는 최신 치료 방법까지 정리해놓은 보고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연세대 의대는 전군의 합격을 결정하기 전, 학장 이하 주요 교수들이 모여 회의를 거쳤다. 중증장애 학생이 입학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군이 의대 생활이 가능한지 시설을 한 번 더 점검하고, 교수들의 의견을 들었다. 연세대 의과대학 김덕용 부학장은 "참석 교수들이 만장일치로 '전군의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중학교 입학 전만 해도 전군은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다. 어머니 조정선(49)씨는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해서 싫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해서 싫다는 '불만 덩어리' 자체였다"고 했다. 하지만 사춘기는 1년이 못 가 끝났다. "특수시설이 아닌 일반 중학교로 날 입학시키려고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지켜봤어요." 전군은 '중증 장애인을 수용할 시설이 마땅찮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입학을 반대하는 일반 학교를 설득하기 위해 어머니가 수백 번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달리했다. 어머니 조씨는 "어차피 앞으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데, 학교 때부터 적응시키고 싶었다"며 "일반 학교 입학 이후 불만 늘어놓는 것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제 풀이 과정을 길게 써 내려가야 하는 수학도 전군의 발목을 잡았다. 전군은 "수학 공부를 1시간 하면 다른 과목을 몇 시간 한 것처럼 피곤했다"고 했다. 전군은 암산 비중을 늘려 필기를 최소화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두 가지 길밖에 없었어요. 머릿속으로 한번 열심히 암산해보는 것, 아니면 '나는 장애가 있으니 안 된다'고 포기하는 것. 다행히 하면 할수록 적응이 됐습니다."

전군은 이번 달 초부터 수학 과외도 시작했다. 상대는 근처 아파트에 사는 중학생이다. 전군은 "그동안 몸이 불편한 것보다 '어디가 왜 아프고 어떻게 치료하면 된다'는 것을 몰라 더 괴로웠다"며 "의사가 돼 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고, 환자들에게 친절히 설명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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