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 마지막 소원, 이제야 풀었어요"
정금하 씨(오른쪽)가 9일 장기 이식자에게 선물하려고 손수 뜬 목도리를 두르고 남편 김경수 씨와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정금하 씨 제공 |
“엄마 회사 일로 바쁘니깐 그냥 하나 사.”
2008년 2월 설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막내딸이 어리광을 부릴 때 주고받은 대화다. 그때만 해도 그게 막내딸의 마지막 소원이 될 줄 몰랐다. 막내딸은 이듬해 4월 뇌출혈로 뇌사 판정을 받았고 신장 각막 간장 췌장 심장을 7명에게 기증한 뒤 세상을 떠났다.
정금하 씨(61·여)는 올해 9월 딸 고(故) 김은정 씨(당시 30세)의 마지막 소원이던 베이지색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다. 딸의 마지막 소원을 늦게라도 들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달 초까지 정 씨가 손수 뜬 목도리는 모두 9개다. 정 씨는 이 목도리를 다른 뇌사자의 장기를 기증받아 새 생명을 얻은 9명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1남 3녀 중 막내딸이었던 김 씨는 유달리 살갑고 효심이 깊었다. 뇌출혈로 쓰러지기 1주일 전이 정 씨 부부의 결혼 40주년 기념일이었다. 이날 고향을 찾은 김 씨는 부모에게 웨딩 사진 촬영을 선물했다. 그날 김 씨는 부모에게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를 보여 주겠다고 했고 1주일 뒤 서울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김 씨는 부모님의 웨딩 사진을 보지도,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지도 못했다. 약속 전날 김 씨는 퇴근한 뒤 집에서 샤워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김 씨는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다시 눈을 뜨지 못했고 며칠 뒤 병원에서는 뇌사 판정을 내렸다.
장기 기증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뇌사 판정 후 의료진이 장기 기증을 권유했을 때만 해도 가족 그 누구도 김 씨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특히 엄마인 정 씨의 반대가 강했다. 남편 김경수 씨(65)는 “다들 언젠가는 깨어날 거라고 믿고 딸을 고향인 동해의 병원으로 옮겼다”며 “하지만 이곳 의료진도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해 가족과 상의한 끝에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 씨 부부는 9일 서울에서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가 주최하는 ‘뇌사 장기 기증인 유가족을 위한 송년의 밤’ 행사에 참석해 장기 이식을 받은 9명에게 목도리를 선물한다. 이 행사에는 정 씨 부부와 같은 뇌사 장기 기증자의 가족 168명과 장기를 기증받아 새 삶을 살고 있는 9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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